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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절이라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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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절이라도 하고 싶다

입력
2008.09.08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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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은하계의 푸른 별 지구에서도 교육열이 가장 높다는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책을 전혀 안 보고 살 수는 없는 일. 반에서 밤낮 꼴찌를 맴돌던 나는 나름대로 용기를 내어서 선생님께 찾아갔다. 이 많은 책을 인간이 어떻게 다 읽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지금은 생존해 계시는지 작고하셨는지 소식도 감감한 서울 덕수초등학교의 민흥기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상 모든 책을 다 읽을 필요는 없다. 다만 네 짝궁보다 조금 더 읽으라고. 까짓 거 그 정도면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용기백배한 나는 친구가 교과서 한 쪽을 읽을 때 한 문단을 더 읽었고, 친구가 한 권을 읽을 때 책의 뒷껍데기까지 읽었다. 그리고 마침내 꼴찌를 다투던 성적이 몰라보게 쑥쑥 올라갔다. 선생님의 소중한 충고 덕분에 나는 책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책처럼 소중한 물건도 없다. 옛날 중세 시대의 양피지 복음서는 잘 가꾼 포도원이나 장원에다 다 큰 소 수십 마리를 주고 바꿀 정도로 귀했다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복음서 한 권을 구하기 위해 용인에다 죽전까지 덤으로 끼워주었던 것이다. 책방에 즐비하게 꽂힌 고전들도 소중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키케로, 세네카, 아리스토텔레스가 애저녁에 공짜로 떨어진 것은 아니다.

수백 년 전 인문학자들이 돈도 안 받고 곰팡이 냄새 나는 알프스의 수도원 지하 곳간을 뒤져서 찾아낸 쪼가리 문서들을 붙이고 꿰매고 풀 발라가면서 완성한 것을 고전문헌학의 엄격한 복원을 거쳐 오늘날 책의 형태로 출간한 것이다. 그분들의 피땀 어린 수고를 생각하면 옛 고전을 펼쳐들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가. 더구나 인터넷 주문하면 익일 특급으로 집에까지 배송해주는 세상이니 고마워서 절이라도 하고 싶다. 고맙다, 책아!

노성두ㆍ서양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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