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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恨가위'적시는 老정객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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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恨가위'적시는 老정객의 눈물

입력
2008.09.08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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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내일 모레인데, 아들이 제일 보고 싶지….”

5,6대 국회의원을 지낸 A씨도 몇 년 전부터 연락이 끊긴 외아들을 그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서울 강북구에서 월세 30만원의 낡은 13평 아파트에 부인과 단 둘이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이렇게 서러운 노정객들이 있다. 한때 국회의원으로서 세상을 호령했는데…이제는 자식마저 찾아오지 않는 신세.

몇 년 전 6,7,9,10대 의원을 지냈고 신민당과 평화민주당 부총재를 역임했던 박영록 전 의원이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1.5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헌정회의 사무처 관계자는 “박 전 의원만 그런 처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헌정회는 1,000여명의 생존 전직의원 중 경제적으로 여유있게 생활하고 있는 경우는 전체의 20%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만65세 이상으로 매월 100만원의 연로지원금을 받는 790여명의 월 평균소득이 110만원이 채 안 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일부 전직의원들은 노숙자로 전락하기도 했고, 지금은 본업인 연기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정한용 전 의원이 한때 경험했던 것처럼 신용불량자가 된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등록된 80대 노인이 며칠 째 집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동사무소 직원이 가정방문 후에 이 노인이 전직 재선의원이란 사실을 알고 당황했던 일도 있었다.

헌정회 관계자는 “회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헌정회 차원에서 몇 차례 실제 생활상을 조사하려고 했지만 상당수 회원들이 자존심 때문에 조사 자체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알려진 것보다 전직 의원들의 실제 생활은 더 어렵다는 얘기다.

연금 대상자 중 30여명은 그나마 100만원 중 일부를 압류당하기도 한다. 대개가 빚 보증을 잘못 선 결과다. 15대 의원을 지냈던 B씨는 선거 당시 도움을 줬던 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가 큰 부담을 지게됐고 8,9대 의원을 지냈던 C씨는 사업을 하던 두 아들의 청을 거절하지 못했다가 낭패를 봤다.

돈 문제로 가정이 풍비박산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C 전 의원의 경우가 그렇다. 큰 아들은 사업 실패 이후 자살했고, 작은 아들은 몇 년째 행방이 묘연하다. C 전 의원은 얼마 전 몇몇 지인들을 만나 두 아들 얘기를 하면서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헌정회 관계자는 “국회의원 시절이 나이 먹고 나면 인생의 족쇄가 되는 경우가 꽤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힘들게 병마와 싸우지만 경제적 곤궁함 때문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D 전 의원(3,4,5대)은 매월 치료비만 300만원이 넘지만 이를 부담할 능력이 없어 일부 헌정회원들이 연금 중 일부를 기부한 기금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 헌정회 관계자는 “순전히 돈 때문에 입원치료 대신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국회의원이 되면 100가지가 달라진다’는 속설 때문일까. 뱃지를 다시 달기 위해 선거에 매달리다가 가산을 탕진한 경우도 적지 않다. 김홍만 전 의원(13대)이 단적인 예다. 14대 재선에 실패한 뒤 15,16대에도 잇달아 출마했지만 낙선을 반복, 지금은 헌정회의 연로지원금 외엔 수입이 없다. 헌정회 관계자는 “의원 시절에 퇴임 이후를 준비한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헌정회도 손을 쓸 여력이 별로 없어 보인다. 1991년 5월 헌정회육성법이 제정됐고 94년 10월부터는 국회 등록법인이 됐지만, 국가보조금은 연간 7억원에 불과하다. 최근 들어서는 그나마 노정객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헌정회 사무실 자체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95년부터 서울시청 을지로별관의 120평 공간을 사실상 무상으로 사용해왔는데, 최근 들어 서울시청측에서 직간접적으로 퇴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헌정회 관계자는 “명절 때가 오면 전직 의원들의 연락처나 근황을 묻는 전화가 많이 걸려 오는데 있는 그대로 얘기하지 못할 때가 많다”며 “올해 추석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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