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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겸손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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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겸손이 힘이다

입력
2008.09.0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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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의 감동과 흥분이 오래 가고 있다. 특히 한 번도 패하지 않고 금메달을 획득한 야구팀의 경기는 멋지고 극적이었다. 쿠바와의 마지막 경기, 1사 만루의 숨막히는 상황을 병살처리로 끝냈을 때 온 국민이 함성을 질렀다. 올림픽 막바지에 거둔 금메달이어서 기쁨이 더 컸던 것 같다.

김경문 감독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리더십의 필수 요소는 사사로운 감정을 털어내는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야구는 4번 타자만 가지고 베스트 나인을 꾸릴 수 없으며, 희생정신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스포츠와 뚜렷하게 구별된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그게 야구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스포츠에서 본 겸손함의 감동

더 인상적인 것은 안토니오 파체코 쿠바감독이었다. 그는 "우리는 오늘 밤 좋은 피처와 마주쳤다. 그는 정말 타자들에게 강했다. 우리는 9회 말의 마지막 상황을 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야구다"라고 말했다. 삶과 승부에 오랫동안 잘 단련된 사람이라야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는 김 감독에게 축하인사를 하면서 축구처럼 유니폼을 바꿔 입자고 제의하기도 했다. 이 경기 나흘 전에 4대 7로 한국에 패했을 때도 그는 경기결과가 불쾌하지는 않다면서 한국이 훌륭한 팀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가 졌다면 선수단은 물론 한국인들이 그렇게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었을까.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스포츠는 원래 이기고 지고 하는 것이지만, 승부 결과는 상대를 인정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항상 최선을 다하되 너무 승패에 집착하지 말고 바둑에서 하는 말처럼 勝卽欣然 敗亦可喜(승즉흔연 패역가희), 이기면 기쁘고 져도 역시 즐겁다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 마음은 겸손에서 우러나온다.

박태환을 기른 노민상 감독은 수영선수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겸손과 인내 등 동양적 미덕을 꼽았다. 노 감독은 8관왕에 오른 마이클 펠프스가 겸손함 등 동양적 미덕을 갖춘 선수라고 평가하면서, 겸손과 인내를 갖춰야 선수 생명도 오래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박태환도 초등 5학년 때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부정출발로 실격된 아픔을 겪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면서 지금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스포츠 이야기를 더 해 보자. 미국여자골프협회(LPGA)가 내년부터 영어회화 실력을 테스트해 합격하지 못할 경우 2년간 출전정지 조치를 한다 해서 국내외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LPGA의 비미국인 골퍼는 26개국 121명이며 한국인은 37%가 넘는 45명이나 되는데, 이 조치가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 골퍼를 겨냥한 것이라는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영어를 못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자기들끼리만 어울려 다니고 상금만 챙겨 얄밉게 보이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몇 년 전, 영어가 안 되는 한국골퍼를 위해 LPGA의 프로암 행사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한국인은 그 골퍼가 스폰서인 아마추어에게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캐디인 아버지와 연습에만 열중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한심했다고 한다. 영어가 문제가 아니라 자세가 문제였으며, 그녀는 프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어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미국 골퍼 크리스티 커는 3년 전 LPGA대회에서 우승한 뒤 소감을 묻는 질문에 "목 말라요. 맥주가 필요해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맥주회사가 스폰서였던 것이다. 꼭 필요한 것은 영어나 명연설이 아니라 남들을 즐겁게 해 주는 기지와 재치, 유머다.

사람과 나라의 격을 높여가야

스포츠도 그렇지만 다른 부문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인정하고 자신을 낮추는 자세라야 호감을 얻을 수 있고 사람과 나라의 격이 높아질 수 있다. 중국인들의 혐한(嫌韓)감정이 우려할 정도로 커진 것도 한국인들이 각 분야에서 겸손하지 않았기 때문인 측면이 강하다. 깔보고 함부로 대하고 약속을 어기는 일이 누적된 결과라고 봐야 한다.

무슨 일에든 겸손하고 재치가 있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설사 성공하더라도 존경 받지는 못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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