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의 꿈은 1년 만에 악몽으로 변했다. 내 집 마련과 펀드투자로 희망의 계단을 차근차근 오르던 회사원 강모(36)씨는 그보다 더 높이 쌓인 장벽(경제난, 금융시장 혼란) 앞에 갈 길을 잃었다. "남들만큼만 살고싶었는데 욕심이었나 봅니다." 고개를 떨궜다. 1년 사이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그의 연봉은 3,612만원(세전), 지난해 9월 9,000만원의 종자돈이 생겼다. 7년간 부은 장기주택마련저축의 만기가 돌아온 것. 중산층 진입 자금이기도 했다. 고민 끝에 서울 강북의 소형 아파트(79㎡)를 분양 받았다. 계약금(7,000만원)을 낸 뒤 남은 돈은 예금을 합쳐 3,000만원. 분양대금의 40%(1억4,000만원)만 대출받은 터라 이후를 대비해야 했다.
당시 펀드열풍은 그를 다시 고민하게 했다. '부자들의 투자수단' '높은 수익률' 등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지난해 11월 난생처음 펀드에 가입했다.
손실 우려도 했지만 생활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선 '선택과 집중'이란 생각에 3,000만원을 모두 몰아넣고 적립식(매달 50만원)까지 가입했다. "최소 20% 수입"이란 은행직원의 설명에 행복한 계산(?)도 했다. '조금만 허리띠를 졸라매면 3년 뒤 내 집이 생긴다. 펀드로 빚도 줄일 수 있고….'
예상은 올 초부터 빗나갔다. 펀드가 먼저 망가지더니(현재 -35%) 대출금리(5%대→6%대)도 올랐다. 물가는 도둑처럼 임했다. 리터당 1,100원하던 경유는 어느새 1,800원까지 치솟았고, 쌀 반찬 우유 등 식비부터 하다못해 아기 기저귀까지 안 오른 게 없다. 이자를 포함한 한달 생활비는 9월 현재 전년대비 두 배 가까이(170만원→300만원) 늘었다.
수입과 지출의 균형이 깨지니 빚이 늘었고, 목돈 쓸 일이 생겨도 1,000만원 넘게 손해 본 펀드를 환매할 수 없어 또 빚을 냈다. 펀드담보 대출, 마이너스 대출, 회사 직원용 대출, 심지어 친척에게까지 손을 빌렸다.
현재 그의 빚은 아파트담보 대출(현재까지 받은 7,000만원)을 포함해 1억2,000만원. 다음달 아파트 중도금 납입이 돌아오면 빚이 4,000만원 가까이 더 생긴다. 최근엔 해외출장 중 남겨온 달러, 비상금, 아이의 저금통까지 털어 급한 불을 끄고 있다.
강씨는 자신을 중산층, 그렇다고 영세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 사이에 애매하게 낀 신세다. 하다못해 유가환급금 대상(연봉 3,600만원 이하)에선 제외되고, 감세의 혜택도 거의 없는 사각지대에 존재한다.
그러나 지향점은 확실하다. 눈높이와 가치관은 상류를 향하고 있는데, 소득 등 현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 하에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중산층(분산투자) 영세민(현실안주)보다 최근 우리 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온갖 위기(고물가, 금리 급등, 주식 폭락, 환율 불안)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계층이다.
비슷한 사례는 주위에 많다. 무리해서 유학 보냈다가 환율 급등에 우는 부모, 더 늦기 전에 집을 샀다가 대출금리와 부동산가격 하락에 시달리는 가장이 샌드위치 계층의 전형이다. 최근엔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주부 이모(32)씨는 "1년 전 급매로 나온 아파트도 사고, 주식도 올라 당장이라도 부자가 된 기분이었는데, 모두 엉망이 된데다 얼마 전 직장에서 해고되면서 이러다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책임은 투자자의 몫, 하지만 모든걸 그들 탓으로 돌리기엔 어깨를 짓누르는 짐이 너무 무거워 보인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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