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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종 두번째 소설집 '사과의 맛'/ 동화로, 설화로, 버무린 비루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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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종 두번째 소설집 '사과의 맛'/ 동화로, 설화로, 버무린 비루한 현실

입력
2008.09.0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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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오현종(35)씨가 두 번째 소설집 <사과의 맛> (문학동네 발행)을 펴냈다. 수록작 9편은 오씨가 첫 소설집 <세이렌> (2004) 출간 이후 <너는 마녀야> (2005)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2007) 등 두 편의 장편을 내는 와중에도 부지런히 발표한 단편들이다.

소설집은 저마다 다른 주제, 소재, 스타일을 갖춘 작품들로 화사하다. 동화, 설화, 민화 등을 차용한 작품부터 정통 소설 작법에 충실한 것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특히 옛이야기를 패러디한 작품들이 돋보인다.

수록작 '상추, 라푼젤' '헨젤과 그레텔의 집'은 유명한 그림 형제 동화에서 이야기 뼈대를 빌려왔고, '수족관 속에는 인어가' '연못 속에는 인어가'는 안데르센 동화와 중국 인어 설화를 각각 패러디했다. 그 밖에도 동화 <신데렐라> <알라딘과 요술램프> , 페르시아 민담, 성경 <욥기> 등 수다한 옛이야기가 이번 소설집의 살을 이룬다.

장르적 요소를 접목한 작품들도 눈에 띈다. 달에 사는 할머니, 엄마, 딸의 이야기를 로봇 '손오공'의 눈을 통해 서술하는 '창백한 푸른 점'은 SF의 향내가 짙고, 살인으로 치닫는 고부 간 갈등을 그린 '닭과 달걀'엔 미스터리적 요소가 가미됐다.

음식으로 따지면 이번 소설집은 푸짐한 '퓨전 요리'의 향연이다. '오레오 쿠키' '베스킨 라빈스' 등 당대적 요소를 활용한 유머들이 첫 소설집의 비극적 톤을 일신하며 이 퓨전 요리를 더욱 맛깔스럽게 한다.

작가는 이렇게 다양한 이야깃감을 채집해 치밀하고 단단한 작품들을 빚는데, 그 심이 되는 것은 지금, 여기의 현실이다. '헨젤과 그레텔의 집'의 주인공은 원작 동화 속 오누이처럼 착하지 않다.

혼자 버는 돈으론 도무지 가족 부양이 안될 것이란 판단이 선 그는 조부모를 내다버린다. "가족은 꼭 붙어 살아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요. 골로 가든 어디로 가든 한데 엉겨붙어 살아야 가족이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56쪽)

'수족관 속에는 인어가'에서 인어는 인씨 성을 가진 하반신 불구 장애인이다. 그런 그녀를 사랑한다며 아내로 맞은 남편은 얼마 안 있어 다른 여자를 집에 들인다. "미안해,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 건 결코 아니야. 그렇지만 허리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설명할 방법은 없어."(114쪽)

어부에게 색시감으로 붙잡혀와 눈물로 진주를 만드는 인어의 이야기 '연못 속에는 인어가'를 읽다보면 착취와 학대에 시달리는 일부 외국인 이주 여성들의 문제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오씨는 "현실의 이야기를 쓰되 낡은 방식으로 쓰고 싶지 않다는 욕심에 다양한 포스트모던적 스타일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제 네 권의 작품집을 갖게 됐건만 오씨는 문학 앞에서 늘 경건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녀는 오래 사랑해온 여인의 마음을 얻으려 그녀 집 앞에서 한바탕 줄타기 공연을 벌이다가 끝내 투신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수록작 '곡예사의 첫사랑'에 빗대 소설가로서의 각오를 밝혔다.

"이야기로 독자를 매료시키지 못할 때 작가는 죽음을 맞는 것 아닐까. <천일야화> 의 셰에라자드처럼 이야기마다 목숨을 거는 것, 그게 소설가의 운명인 듯싶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사진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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