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부풀려진 ‘9월 위기설의 유령’이 금융시장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정부는 “실체도 근거도 없다”고 일축했고 경제 전문가들도 “과장된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패닉(공황상태)에 빠진 시장은 귀를 닫아 버렸다.
‘위기’ 아닌 ‘위기설(說)’이 쏠림 현상을 확대 재생산시키며, 시장을 진짜 위기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11년전 환란 때처럼 해외 금융기관과 언론들이 한국의 위기설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는 2일 당국자들이 총동원돼 하루 종일 확산되는 위기설 진화에 나섰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국회 경제정책포럼에서 “공교롭게도 국채 만기가 똑 같은 날짜에 몰려있어서 그렇지 9월이라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며 “우리 경제가 어렵기는 하지만 환란 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단언했다. 김동수 기획재정부 1차관도 긴급 금융상황점검회의를 통해 “정부는 시장을 면밀히 분석하고 전문가들과 논의한 결과 ‘대란설’은 과장된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고, 신제윤 차관보국제업무관리관 역시 브리핑을 통해 “9월 만기 도래하는 외국인 채권이 채권시장이나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이 같은 당국의 강도높은 부인에도 불구, 시장은 이틀째 패닉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환율은 당국의 구두개입에도 불구, 18원이나 급등하며 1,130원선(종가 1,134원)까지 무너뜨렸다. 이틀간 상승폭이 무려 45원에 달한다. 주식시장에서도 투매심리가 이어지며 장중 한때 코스피지수 1,400선이 붕괴(종가 1,407.14)되기도 했다. 금리도 급등, 5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이 6%대에 진입하는 등 금융시장은 주가ㆍ원화ㆍ채권가격이 모두 추락(트리플 약세)하는 총체적 불안양상을 드러냈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위기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위기를 더욱 조장하고 있을 뿐이라고 진단한다. 무엇보다 외국인들이 보유한 채권이 대부분 국채로 국가부도상황이 아닌 한 일시에 회수할 이유가 없고, 회수한다 해도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흔들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설사 일시에 자금 회수에 나서더라도 이미 스와프(달러 교환) 계약을 맺어서 만기에 달러를 새로 사들일 필요가 없는 만큼 외환시장을 자극할 요인이 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결국 남는 것은 금융시장의 과도한 쏠림 현상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는 극단적 위기는 아니더라도, 시장의 과도한 일방적 기대심리가 지속될 경우 정말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몇몇 해외언론과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위기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는 것도, 시장불안과 쏠림현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의 대공황도 루머로 시작됐다”면서 부풀려진 위기설과 이로 인한 시장의 맹목적 기대심리에 우려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시장에서 만들어진 위기설이 저절로 진화될 수는 없다. 결국은 정부가 시장에 믿음을 주는 것이 관건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지금 위기설의 본질은 정부의 거시경제정책이 시장에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시장 쏠림현상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위기요인이 갈수록 번져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9월 위기설이란?
외국인들은 현재 9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약 67억달러의 채권을 국내에서 보유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이 채권을 재투자하지 않고 모두 처분해 떠나가면 환율과 금리가 폭등하고 나라전체가 환란때처럼 외환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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