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 정상들이 한 자리에 모였지만 서로 다른 처방을 제시하면서 미묘한 갈등을 노출했다. 특히 러시아에 대한 제재 수단과 강도를 두고 입장차가 뚜렷해 정상회의 이후에도 후유증이 만만찮을 것으로 전망된다.
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긴급정상회의에서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최근 남오세티아와 압하지야 자치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한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해 구체적인 대응책을 논의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1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전략적 동반관계 구축을 위한 러시아와의 협상을 잠정 중단할 것을 EU에 요청하는 등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브라운 총리는 전날 신문 기고에서도 "주요8개국(G8) 정상회의에서 배제하는 등 러시아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다소 위험이 따르더라도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 비율을 줄이는 방안까지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거나 점령을 당했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과 동유럽 국가들도 대부분 영국과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서유럽 핵심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며 강경 조치에 반대했다. 특히 EU 순회 의장국으로 그루지야 사태 초기부터 러시아와 그루지야 간 평화협상을 중재했던 프랑스는 모든 노력이 무위로 끝날까 우려하고 있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무장관은 "경제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당장은 시급하지 않다"며 제재에 앞서 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은 "위기를 증폭하는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며 영국과 시각차를 보였다. 이탈리아의 프랑코 프라티니 장관 또한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러시아의 도움은 필요하다"며 적대적인 대응을 경계했다.
회원국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러시아가 EU 석유 소비량의 30%, 천연가스 소비량의 40%를 제공하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동유럽 국가들은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는 등 '에너지 종속'이 더욱 심하다. 이에 따라 러시아를 지나치게 자극하는 강경 조치보다는 구두 경고와 일시적인 제재만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로 프랑스가 작성한 정상회의 초안에는 "러시아가 앞으로 더욱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할 것을 기대하며, EU와 러시아간 유대관계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재고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회의장 주변에선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보이콧, 전략적 동반관계 구축 확대를 위한 회의 연기, 러시아 외교관에 대한 비자 발급 제한 등의 조치도 거론되고 있다.
반면 러시아의 강경 입장은 수그러질 기미가 없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EU정상회의 개최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 TV연설에서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 거부 등 5대 외교원칙을 발표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러시아도 다른 국가들처럼 특별한 이익을 갖는 지역이 있다"며 "EU가 러시아를 제재하면 상응하는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도 "유럽 국가가 작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그루지야 사태에 개입하길 원한다면 막을 수는 없겠지만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강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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