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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글 쓰는 자, 똑바로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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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글 쓰는 자, 똑바로 써라"

입력
2008.09.02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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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 전 작고한 정달영 전 한국일보 주필을 기리는 유고집 '참 언론인이 되려는 젊은이들에게'의 출간 소식을 신문 서평에서 먼저 읽었다. 휴가를 한가롭게 보내던 터에 "기자는 똑바로 글 쓰는 자"라는 제목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뒤늦게 살펴보니 고인이 <기자론 기사론> 에서 "글 쓰는 자, 똑바로 써라!"고 남긴 가르침이다.

그는 평생 똑바른 글을 쓴 '참 언론인'은 아닐 수 있다. 1980년 신문사에서 처음 만났을 때 편집국 데스크였으니, 유신(維新)과 5공의 굴레에 얽매였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 편집국장과 2차례 주필을 지낼 때도 뚜렷한 이념 정향이나 정치적 소신을 드러낸 기억은 없다. 늘 원만했고 타협적이었다.

도량과 품격 돋보인 글 쓰기

그러나 그는 여느 글 쓰는 자들과 달리 이념과 정파 등에서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너른 도량을 지녔다. 정밀한 문장으로 시비를 가리면서도 모나지 않았다. 깊이 천착하지 않은 국제문제에서도 이념 경계를 넘어 평화와 사랑의 정신을 일깨웠다. 진지함과 따뜻함을 함께 갖췄다. 독실한 신앙과 세속의 이해에 집착하지 않는 선비 같은 삶의 자세가 바탕이었을 것이다.

생전의 고인을 경외한 것은 그 도량과 품격 때문이다. 기자로서의 '바른 생각, 바른 정신'이 곧 투쟁적 글과 행동을 뜻하지 않고, 굳이 그럴 게 아님을 그는 몸소 보여주었다. 시대와 이념과 정파 와 이해를 초월하는 것이 글 쓰는 자의 본분임을 실천으로 일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두텁지 않은 인연을 좇아 주제 넘은 칭송(稱誦)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과 이 땅의 기자들이 얼마나 바른 생각으로 바른 글을 쓰는지 돌아보자는 뜻이다. 민주주의와 정의, 인권과 법치, 비판적 보도와 언론자유 등 온갖 고상한 명분을 되뇌지만 과연 좌우와 위아래를 두루 살피고 가까운 이해보다 멀리 있는 듯한 진실을 애써 찾는지 반성했으면 한다.

고인의 너른 도량에서 읽을 수 있는 역사와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에 우리는 얼마나 힘쓰고 있는가. 나라 안팎 이슈에서 간단히 선악을 구분하기에 앞서 역사적 맥락과 인간과 사회와 국가의 본질을 제대로 천착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쉽게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내 편과 적을 가른 뒤 맹목적 옹호와 살벌한 비난에 매달리는 행태를 반성해야 한다.

DJ 정부이래 지난 역사를 함부로 끌어와 서로 더불어 살 수 없는 무리라고 배척하는 무모한 싸움에 글 쓰는 이들이 앞장서고 있다. 저마다 친일 용공 독재 반미 반시장 반민주 따위의 낙인을 앞세워 사생결단 하듯 다투는 꼴은 무엇보다 수시로 21세기를 떠드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다.

고인처럼 억압의 시대를 산 세대와 비교하는 것은 망발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이들일수록 사회적 과제를 진정으로 고민하고 정연한 논리로 다투는 노력에 소홀한 것을 자주 목격한다. 강파르고 어설픈 주장을 앞세운 뒤 습관처럼 일제와 북한과 3공ㆍ5공과 박정희ㆍ 전두환ㆍ 김정일을 끌어대는 해괴한 논법을 일삼는 이들이 갈수록 많다.

특히 어두운 시대의 고통을 직접 겪거나 맞서 싸우지도 않은 이들이 저항과 투쟁의 언행을 흉내내는 꼴은 지켜보기 힘들다. 그런 몰염치를 무엇으로 합리화하든 근본은 간사한 생각과 정신이다. 바른 글을 쓰는 지극한 어려움은 감당하지 않고서도 글 쓰는 자로 행세하려는 심리를 넘어, 다른 이의 생각과 이익은 아랑곳 없이 제 편견과 이익을 좇는 이기적 동기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간사한 글 쓰기 행태 버려야

좌우와 반정부ㆍ친정부를 가림 없이 사악한 글 쓰기가 판치는 바람에 사회가 한층 방황한다. 사소한 일에 곧장 전투태세를 취하기보다 상식과 순리를 돌보는 자세가 절실하다. 이 글도 도량과 품격이 없다고 욕하겠지만, 글 쓰는 자들이 그런 덕목을 되새기는 데 도움된다면 감수한다. 덧붙여, 언론을 발판으로 알게 모르게 공직을 탐한 이들에게도 고인의 정갈한 처신을 떠올리기를 권한다. 그들이 신문과 언론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강병태 수석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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