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냉전시대가 낳은 대표적인 러시아 작가 솔제니친이 세상을 떠났다. 솔제니친을 떠올리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 앞에서 빈손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내 스무 살 무렵이 함께 떠오른다. 강제수용소에서 작은 빵조각으로 스프 접시 바닥을 깨끗하게 닦아먹는 이반 데니소비치 덕분에 나는 자취방에서 맛없는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때 읽었던 <암병동> 은 구체적인 줄거리는 거의 지워져 있고 그 책을 읽었을 때의 정서의 결만 뚜렷하게 남아 있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닫혀 있는 공간을 그리고 있으니, 이 소설의 내용은 분명히 어두웠을 것이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는 이상하게도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아 있다. 내 마음이 어두운 내용은 배제하고 밝은 부분만 확대하여 받아들였기 때문일까? 암병동>
나는 내 마음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기억하기 싫은 것은 버리면서 나를 자주 속여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을 견디려면 내 마음에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 모른다. 어두운 곳에 숨어야 편안해지는 내성적인 소년이었던 나는 굳이 햇빛 잘 드는 방을 놔두고 좁고 어두운 다락방에서 이 소설을 읽었다. 경쾌하고 빠른 곡조로 연주한 슬픔처럼 그것은 내 몸에 잘 흡수되었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암병동에 입원한 여러 환자들이 겪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중에서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은 암에 걸린 한쪽 유방을 절개해야 하는 소녀가 수술 전날 울면서 연인에게 아름답게 빛나는 유방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다음날이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유방을 연인의 손의 촉감 속에 영원히 새겨 넣으려는, 무력하지만 생생하고 순결하게 빛나는 시간! 그때 나는 암환자들의 고통과 절망에 나 자신을 겹쳐 넣고 불안한 내 젊음의 시간을 읽으려고 했는지 모른다.
김기택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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