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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전시 앞둔 중견작가 이기봉 국내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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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전시 앞둔 중견작가 이기봉 국내 개인전

입력
2008.09.0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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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족관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한 권의 책을 봤을 때, 유럽인들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신음을 내뱉었다. 한낱 해파리처럼 창백하게 흐느적거리는 인간 지성의 상징. 그것은 "20세기말 지식의 층위에서 가장 중요한 한 단면"이었다.

생각의 흐름으로 형식을 만드는 이기봉(51)의 작품 'Bachelor-The Dual Body'(독신자-이중 신체)가 지난해 독일 ZKM미술관에서 전시됐을 때의 일이다.

철학의 시각적 유희로 해외에서 더 유명한 중견작가 이기봉(고려대 교수)의 개인전 'The Wet Psyche'(젖은 정신)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 ZKM미술관 전시로 전 세계 큐레이터들의 편애를 받고 있는 그는 1986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주목받기 시작한 작가.

9월 싱가포르비엔날레와 11월 헬싱키 KIASMA 현대미술관 전시에 이어 연말에는 올 3월 베를린의 세계문화관(House of World Cultures)에서 선보인 전시 'Re-Imagining Asia'(아시아 다시 상상하기)을 영국 월설의 뉴아트갤러리로 옮겨 순회 전시한다.

이번 서울 전시에는 대형 설치작품과 평면회화가 총 9점 선보인다. 가장 강력하게 보는 이를 사로잡는 작품은 역시 수족관의 책. 이번에는 책을 한 권 더 넣어 외로웠던 독신에서 커플로 변형, 'End of The End'(끝의 끝)이라는 작품으로 변주했다.

인간의 자기애를 은유하기 위해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를 두 권의 플라스틱 책으로 만들어 푸른 물 속에서 헤엄치도록 만든 것. "책은 하나의 사물이지만 지적이고 육감적이며 환상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몸이고, 체계"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그것이 이른바 '젖은 정신'일 테다.

하지만 사물이나 존재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판타지를 불러일으켜 초월적 영역에 다가가게 만드는 물이라는 재료의 물질성은 회화작품에서 보다 웅숭깊게 드러난다.

수묵화의 농담처럼 보이는 안개 속의 나무는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손가락 마디만큼의 틈을 두고 두 개의 반투명한 화면이 중첩돼 이뤄졌다. 경계를 흐릿하게 지우는 물과 안개를 통해 평상시에는 드러나지 않던 사물의 다른 측면 속에서 어떤 정신이나 영혼을 발견하는 것. 작가는 "그것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경험들"이라고 말했다.

설치와 평면회화를 병행하는 그의 작품들은 미국 뉴욕의 자산운용사 노이버거 버만 콜렉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질 샌더 등이 소장하고 있다. 29일까지. (02)735-8449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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