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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기름 한방울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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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기름 한방울의 마법

입력
2008.09.01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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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결 고운 여인이 머리에 은은한 동백기름을 바르고, 참빗으로 곱게 빗어 틀어 올리고는 두 손을 가르마의 양 사이드로 각기 붙여 쪼록 훑어내리는. 내 어릴 적, 어디서 본 장면인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동백꽃씨를 압착하여 얻어내는 동백기름은 누리끼리한 생지와, 여과를 거쳐 맑아진 정제유로 나뉜다. 이 가운데 머리에, 두피에, 부스럼에 특효인 것은 맑은 정제유다.

요즘에야 '어린 머릿결'을 만들어 준다는 샴푸, 모발의 탄성을 높여 팽팽한 머릿결을 유지해 준다는 샴푸에 갖가지 헤어트리트먼트 제품이 나와 있지만, 그 옛날 엉킨 머리를 풀어 곱게 빗질하게 만드는 일등 공신은 동백기름 하나였다.

21세기 들어 한국이나 일본에서 다시 동백기름의 효능에 주목, 모발제품이나 화장품의 성분으로 적극 연구 중이라고. 옛 사람들이 먹고 쓰던 것들이 진짜 '명품'이었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닫게 된다. 그 가운데, 미용으로 약용으로 두두 쓰이던 '명품 기름'은 너그러운 자연이 우리에게 준 일등 선물이다.

■ 참기름, 들기름

지중해 사람들이 말하기를 "올리브의 맛은 지혜로운 자만이 안다"고. 즉, 지혜가 덜 여물은 '얼라'들은 올리브의 깊은 향기에 감사할 줄 모른다는 의미가 아닐지. 내 경우 '얼라' 때는 그 맛을 몰랐는데, 갈수록 즐기게 된 식재료가 있다면 바로 참기름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참기름의 진미를 몰라서 비빔냉면을 주문하면서도 "참기름은 빼고 주세요"라는, 하수(下手)의 부탁을 덧붙이고 살아왔다. 연애시절, 유독 참기름을 멀리하는 내 입맛을 고쳐주겠노라 장담을 했던 이가 바로 지금의 남편. 그는 '참기름 마니아'다. 그래서 아내로서는 편한 감이 있다. 집에 찬거리가 넉넉지 않을 때 참기름 덕을 보기 때문이다.

순두부 하나 끓여 참기름을 한 작은술 더하거나, 야채를 볶아 참기름을 더하거나, 구운 맨 김에 따끈한 밥을 한 술 싸서 간장, 참기름, 송송 썬 파를 더한 양념장에 찍어 먹도록 준비하면 그만이다.

참기름의 진진한 풍미를 처음 느낀 것은 제주도 동문시장의 기름집. 마침 짠 지 얼마 안 된 참기름이 미적지근한 온도로 소주병에 담겨 있었는데, 그 냄새는 지금껏 알던 느끼함이 아니었다.

집으로 가져온 국내산 갓 짠 참기름 한 술이면, 입맛 없는 날에도 간장에 김 가루만 부숴 비벼 먹어도 밥맛이 난다. 달걀 부칠 때도 몇 방울 떨고, 생선도 참기름을 살살 겉면에 발라 구우니 더 꼬숩다. 무엇보다 참기름을 자주 먹으면서 내 컨디션이 향상된 사실이 놀랍다.

여학교 시절부터 길게 기른 내 머리는 스트레스와 영양 부족으로 인해 종종 한 움큼씩 빠지고는 했는데, 참기름 섭취를 늘리면서 머릿결도 좋아지고, 모발 자체가 덜 빠지게 되었다. 맛도 맛이지만 그 영양이 기특하다.

영양과 맛으로 치면 들기름을 빼놓을 수 없는데, 특히 들기름은 절밥을 지을 때 마법을 부리는 식재료로 기억된다. 죽 한 그릇, 나물 한 가지도 들기름 향기를 '샥' 입히면 풍부한 맛을 낸다.

마늘이나 육류 등을 넣지 않은 맑은 식사가 들기름 한 술에 화려해지고, 영양가도 올라간다. 특히 들깨는 여성들에게 좋은 식재료이기 때문에, 손발이 차거나 순환이 잘 안 되는 혹은 기분이 가라앉아 무기력한 여성들에게 권하는 맛이다.

■ 녹차유, 고추씨기름, 산초기름

기름기를 섭취하면 살이 찐다?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포인트는 어떤 기름을 먹느냐의 문제. 버터나 육류 등으로 만들어지는 기름은 피를 탁하게 하여 체내 노폐물을 쌓이게 하니 결과적으로 몸에 불필요한 살이 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식물성 기름, 특히 불포화 지방산을 잔뜩 머금은 식물성 기름은 그 반대다.

혈중 콜레스테롤을 억제하고 장기적으로는 체력을 향상시킨다. 녹차처럼 비타민 C가 풍부한 재료로 만든 기름은 게다가 비타민까지 풍부하니까 나물을 무치거나 샐러드드레싱을 만들 때 요긴하다.

국내산 고추의 씨를 털어 만든 고추기름은 고급스러운 매운 맛을 만들어낸다. 매운 순두부와 같은 찌개류를 끓일 때는 물론, 파스타 면을 삶아 고추기름과 편으로 썬 마늘에 볶는다든지, 간장 양념의 볶음 국수를 만들 때 혹은 군만두나 딤섬에 소스처럼 곁들인다든지 할 수 있다. 간단히 음식맛을 다양화 시켜주는 비결.

좁쌀보다 조금 크게 열리는 산초를 압착하여 만든 기름은 그 향기가 멀리 퍼진다. 독특한 냄새가 낯선 사람들은 즐기지 않는 산초. 하지만 한 번 입맛을 들이면 장아찌로, 탕에 뿌려 먹는 양념으로 두루 먹게 된다. 특히 향긋한 산초기름을 번철에 두르고 시골 두부를 노랗게 지져내면 두부에서 산 내음이 난다.

■ 올리브유, 포도씨유, 아보카도유

'몸에 좋은 기름'으로 이미지를 단단히 굳힌 올리브유는 이제 업그레이드가 과제로 남는다. 우리가 참기름을 먹듯 올리브유를 자주 먹는 지중해권 유럽에서는 일반 올리브유와 구분하여 명품 올리브유를 따로 논한다.

이탈리아 산이냐, 그리스 산이냐, 무슨 농장에서 몇 대째 만들고 있느냐, 올리브의 질은 어떤 등급이냐를 따진다. 나뭇잎 냄새가 강한지, 풀 냄새가 강한지, 맛의 농도를 세밀하게 따진다.

잘 정제된 고급 올리브유에 빵을 찍어 먹으면, 그 자체로 훌륭한 요리다. 좋은 와인을 마실 때처럼 입 안에 향기가 카펫처럼 펼쳐진다.

몸에 좋은 '착한 기름'의 리스트에는 포도씨 기름과 아보카도 기름도 있다. 적당히 먹으면 머릿결과 피부를 실하게 만들고, 몸에 활력도 준다. 포도씨 기름은 식용유 대신하여, 아보카도 기름은 샐러드를 만들 때 이용한다.

박재은ㆍ음식 에세이 <밥 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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