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국의 자원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에너지 자원이 '신냉전' 체제를 몰고 올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얼마 전의 그루지야와 러시아 간 전쟁도 사실은 그루지야내 카스피해 원유를 유럽으로 수출하는 송유관 문제가 핵심이었다고 한다.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풍부한 북극해와 남중국해의 긴장 상태도 고조되고 있다.
에너지정책은 이제 한 나라의 산업경쟁력을 좌우할 뿐 아니라 국가안보까지도 위협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들이다. 최근 유가가 하락세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석탄, 천연가스까지 연결된 에너지 파동은 사실 그리 간단히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동안 세계인구의 10%도 안 되는 G7 국가들이 세계 에너지의 절반을 소비해왔지만 이젠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국가들도 현대화를 위해 엄청난 양의 1차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그동안 에너지를 독점하다시피 써온 선진국들의 전방위적인 대응이다. 합종연횡을 통해 자원개발에 주력하는가 하면 G8 성명을 발표해 '원자력, 재생가능 에너지 등의 활용에 의한 에너지원의 다원화가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다' 라며 신재생 및 원자력 에너지 이용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영국은 풍부한 북해유전을 갖고 있음에도 아제르바이젠 등 카스피해에서 새 유전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고 원자력발전소도 향후 10년 동안 8개 이상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원자력발전 비중이 80%에 달하고 있음에도 '토탈'이란 자국의 석유회사를 통해 해외 가스전 개발에 적극 나섰다. 이탈리아의 석유업체 에니는 카타르, 이라크에서 유전개발 뿐 아니라 러시아의 가즈프롬과 손잡고 리비아 가스전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천연가스가 풍부해 서유럽 27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러시아도 원전 건설에 고삐를 죄고 있다.
석유도, 석탄도 천연가스도 넉넉지 않은 우리로선 화석연료 고갈에 따른 치밀한 에너지 대책이 더더욱 시급한 실정이다. 단기간에 새로운 에너지원과 신기술이 개발될 것이라는 예측과 이를 토대로 한 에너지 수급정책은 현재 상황에선 적절치 않아 보인다.
향후 닥쳐올 거대한 에너지파동에 대비하려면 에너지사용 감소를 위한 대책과 더불어 원자력 및 신재생에너지를 포함한 전방위 대책이 시급하다. 또한 원자력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1차 에너지수요의 7%와 발전량의 16%정도를 공급하며 인류의 삶을 뒷받침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력생산가격이 저렴하고 연료공급이 안정적이어서 에너지안보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우라늄 1g은 석탄 3천㎏, 석유 9드럼과 맞먹는 전기를 생산해 수송과 비축이 쉽다. 확인된 가채 매장량만 230년 이상 원전을 운영하고도 남을 정도다. 또한 연료비 비중이 10%도 되지 않아 80~90%에 달하는 석탄이나 천연가스에 비해 가격이 안정적이다.
현재 우리보다 더 부유하고 '친환경적'이라는 국가들도 우리나라보다 더 적극적으로 원자력을 활용하고 있다. 스위스는 1차 에너지 중 원자력비중이 22%, 스웨덴은 36%, 벨기에 21%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겨우 15%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에너지 안보 및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선택에 많은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전력 생산을 원자력으로 대체하는 등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위해 치밀한 '에너지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실행 가능한 대책을 수립, 시행해 나가야 한다. 당장 준비만 잘한다면 지금이라도 아주 늦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윤종근 한국수력원자력 경영관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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