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하면 굴비이고, 굴비하면 영광 굴비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식성이 바뀌고, 저가 중국산이 몰려와도 영광 굴비의 명성엔 흔들림이 없다. 단지 조상 때부터 그랬기 때문만은 아닐 터. 영광 굴비는 확실히 뭔가 특별한 경쟁력이 있었다.
추석을 앞둔 전남 영광 법성포. 산으로 둘러싸인 초승달 모양의 자그마한 포구에 닿자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질척한 갯벌에서 물 때를 기다리는 어선들 사이로, 은빛 비늘과 황금빛 배를 가진 참조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피해 오후 3시나 되서야 바깥 바람을 쐬기 시작한 참조기들이 줄지어 매달려 바람을 맞고 있다.
영광 법성포 굴비맛은 사실 이 바람맛이다. 칠산 앞바다에서 건져올린 신선한 참조기를 이 지역 특유의 하늬바람(북서풍)과 기온, 습도로 건조ㆍ가공한 조기가 바로 영광 굴비다.
영광 법성포참굴비를 운영하고 있는 박정우(48) 대표는 "지난 10년간 해류변화와 제주도 연안에서의 조기잡이로 인해 이젠 칠산 앞바다에서 참조기를 구경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며 "영광 굴비가 유명한 이유는 칠산 앞바다 참조기의 영향도 있지만, 참조기 가공기법과 법성포만의 자연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전한다. 사실 요즘 잡히는 조기는 대부분 제주도 해역에서 건져 올려진 것들이다.
참조기를 건조시키는 이 지역의 바람은 풍속 4.8m/초. 평균 낮 습도가 45% 이하로, 굴비를 말리는데 최적이다. 습도가 높으면 눅눅해지고, 햇볕이 강하면 너무 바싹 건조된다. 적정온도, 적정습도, 적정풍속 3박자가 어울어져야 최고의 굴비가 탄생하는데, 영광 법성포가 바로 그런 곳이다. 박 대표는 "최근 추자도 등에서도 굴비가공을 하고 있지만 이 곳 영광의 자연환경을 이용해 가공하는 것이 최고의 전통이다"고 말했다.
법성포 주변엔 약 400여 개의 굴비 가공업체가 있다. 이 곳에선 참조기의 냉동보관에서 시작해 출고, 해동, 선별, 무게점검, 세척, 염장, 건조, 중량검사, 출고포장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재래식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자동화와 현대화도 좋지만, 손 맛과 정성이 들어간 고유 전통만 할까. 이 역시 영광굴비만의 경쟁력이다.
자연환경과 재래의 전통으로 탄생한 영광 굴비는 서울의 유명백화점에 납품된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추석을 맞아 영광굴비 2만 세트를 마련했는데, 올 매출목표는 작년보다 40% 늘어난 50억원이다.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추석선물용 영광 굴비는 1세트(10마리)에 7만~30만원. 수십만원, 심지어 백만원을 웃도는 것도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2004년부터 굴비의 명품화 기치를 내걸고 친환경 가공기법을 도입한 '황제굴비'를 탄생시켰다. 황제굴비는 일반 참조기의 약 2배 크기로, 10년 이상 자란 것으로만 가공한다. 워낙 잡기가 힘들어 1년에 30세트밖에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염장작업도 기존 천일염에 비해 10배 가량 비싼 황토소금을 사용한다. 황제굴비 중에는 최고 2백만원짜리도 있다.
이 백화점의 식품 상품기획자(MD) 임준환 과장은 "최근 미국산 쇠고기파동 등 먹거리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고 웰빙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추석선물로 영광 굴비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 영광 굴비 유래는
법성포로 유배 온 이자겸 진상품에 '屈非'라 써 올려
고려시대 인종 재위 당시 척신이었던 이자겸이 반정을 꾀하다 실패, 정주(靜州)로 유배되었는데 이곳이 지금의 영광 법성포다. 이자겸은 이 지역 특산물인 말린 조기에 '정주굴비(屈非)'란 네 글자를 써서 왕에게 진상했다. 비록 자신은 유배되어있지만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뜻. 이 말에서 굴비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영광=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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