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블로트 지음ㆍ박광식 옮김/푸른숲 발행ㆍ436쪽ㆍ1만8,000원
"왜 그 많은 문명중 유럽문명만이 자본주의 근대화에 성공했을까?"
이 질문은 역사의 승자인 서구의 역사가들은 물론, 식민지배를 청산하고 20세기 들어서야 근대국가를 세운 제3세계 역사가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많은 서구 역사가들이 제시한 해답은 유럽 사회의 '특수성'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 과학은 오직 서구에서만 발전단계에 있으며, 체계적인 신학을 끝까지 발전시킨 종교는 기독교 뿐"이라고 저 유명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의 서문을 장식한 막스 베버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프로테스탄트>
유럽문명의 '합리성'을 근거로 서구 근대화의 필연성을 주장한 베버 이후 다양한 유럽중심주의 이론들이 등장했다. 삼포식 돌려짓기와 무거운 쟁기사용 등 농업혁명은 오직 유럽에서 성취됐으며 이것이 자본주의화의 길로 이어졌다고 보거나, 야만적이고 약탈적인 정치체제를 가진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평등주의적 기독교 사상에 영향을 받은 유럽에서만 경제발달을 가능하게 한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이론 등이 그것이다.
남미, 동남아시아 등지에서의 연구를 토대로 유럽 식민주의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데 평생을 바친 역사가이자 베트남전 반대운동, 푸에르토리코 독립운동을 지지했던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던 제임스 블로트(1927~2000). 그는 베버로부터 시작해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로버트 브레너, 보수주의 역사가 데이비드 랜디스에 이르는 8명의 대표적인 유럽중심주의 역사가들을 호출한다.
그는 유럽인들은 비길데 없이 창의적이거나, 홀로 독창적이고 과학적 사고를 할 수 있다거나, 홀로 민주적이고 윤리적이라는 이 지식인들의 역사서술 인식 태도를 협애하기 짝이 없는 '터널사관'이라고 비판한다. 가령 베버는 지중해의 도시들 같은 교역도시가 유럽을 특별하게 만들었다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블로트는 인도양이나 남ㆍ동중국해에도 큰 교역도시가 있었고, 비유럽의 문명에 대해 무지한 베버는 지적으로 불성실한 논리를 전개했을 따름이라고 공격한다.
저자는 유럽의 환경이 다른 지역보다 더 뛰어나지도 않았으며, 문화적으로도 우월한 특성이 없다고 단언한다. 유럽발흥의 원인은 오직 다른 지역의 해운 중심지보다 유럽의 그것이 아메리카로 향한 접근성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영향력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우리 독자들은 명쾌하고 다양한 논거를 사용해 세계적 석학들의 이론적 기반을 허물어뜨리는 그의 반론에 일종의 통쾌함까지 느껴질 정도다.
이 책은 저자가 탈식민화된 세계사 서술을 위해 기획했던 3부작'식민주의자들의 세계이해'의 두번째 책. 다음 작업으로 저자는 유럽중심주의에 의존하지 않고 유럽의 대두와 세계화를 설명하는 저술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완결짓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미국지리학자협회는 2000년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제임스 M 블로트 혁신적 저작상'을 제정했다.원제 'Eight Eurocentric Historians'(2000)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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