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말 조선 바둑의 일인자로 군림했던 노사초(盧史楚) '국수'를 기리는 사적비가 선생의 고향인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에 세워졌다.
지난 23일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는 마을회관 뒤 언덕에서 열린 제막식에는 막내딸 노소진씨(88)와 며느리 이정호씨(86) 등 선생의 후손과 천사령 함양군수, 조건호 대한바둑협회장, 마을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노 국수의 본명은 석영(碩泳)이며 사초는 호다. 1875년 개평리의 부자집에서 태어난 선생은 어려서 한학을 공부했으며 30세가 지나서야 당대 최고수였던 백남규 선생에게 바둑을 배워 타고난 기재로 조선 제일의 '국수'가 됐다.
워낙 패싸움을 즐겨 별명이 '노(盧)패', '노상패'였던 선생에게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며느리 산후 조리 약을 지으러 읍내 한약방에 갔다가 바둑 친구를 만나는 바람에 보약을 손에 든 채 친구 따라 한양으로 바둑 유람을 떠났다는 것. 평생 전국을 누비며 바둑과 인생을 같이 했던 선생은 1945년 봄 별세했다.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