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6개월 간 청와대 참모진은 충성도가 높은 가신 그룹의 영향력이 약화하고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대거 등용되는 변화를 겪었다.
이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연구원(GSI)을 이끌었던 류우익 초대 대통령실장은 1기 청와대 수석진을 GSI 출신 등 학자 중심으로 구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의 브레인으로서 집권 초기 국정운영의 밑그림을 그린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도 GSI 출신이다. 또한 고려대 인맥으로 이 대통령의 측근 그룹인 안국포럼의 김백준 박영준씨도 청와대에 입성해 인사 문제 등에 깊숙이 관여했다.
이들이 내놓은 초대 내각 인선은 편중인사 논란을 야기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원세훈 행정안전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변도윤 여성부 장관과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 박미석 사회정책수석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온 인사들이었다.
법무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청와대 민정수석 등 사정기관 ‘빅 5’가 모두 영남 출신으로 채워졌다. 결국 ‘고소영(고려대ㆍ소망교회ㆍ영남 출신)’ ‘S라인(서울시 인맥)’이라는 비아냥이 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지지율은 곤두박질했다.
이 와중에 촛불집회가 터지면서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이 일괄사의를 표명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7월 초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중심이 된 2기 참모진이 구성됐다. 특히 청와대 수석진 9명 중 7명이 교체되면서 맹형규 정무수석, 박병원 경제수석 등 정치인, 관료 출신이 대거 등용됐다. 이들은 대선 공신은 아니지만 이론과 추진력을 앞세우기보다는 현실과 조화를 중시하면서 ‘소통’을 강조한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했다.
이와 달리 내각은 3명의 장관을 교체하는 소폭 개각에 그쳤다. 특히 한승수 총리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유임되면서 국정기조는 큰 변함없이 유지됐다. 이 때문에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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