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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하명중의 나는 지금도 꿈을 꾼다] <34> 둘째 태어나던 날도 영화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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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하명중의 나는 지금도 꿈을 꾼다] <34> 둘째 태어나던 날도 영화 촬영

입력
2008.08.24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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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상원에 이어 둘째도 아들을 얻었다. 김동인 원작 김수용 감독 작품 <발가락이 닮았다> 의 촬영장으로 새벽같이 떠나는 나에게 짐을 싸주던 아내가 갑자기 배를 잡고 쓰러졌다. 예정일보다 빨리 진통이 온 것이다. 첫 아이 때도 곁에 없어서 미안했는데 이번에도 남편 도리를 못하는 것 같아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었다.

소식을 듣고 급히 장인과 장모님이 달려오셨다. 곁에 있을 테니 편안히 일을 마치고 오라고 하여 집을 나서기는 했지만 촬영장 계룡산을 오르며 줄곧 새로 태어날 둘째가 어떤 아이일지 매우 궁금하였다.

아들일까, 딸일까? 물론 출연 중인 작품의 작중 인물 M처럼 ‘발가락 길이’에서 위안을 얻을 일 따위야 없겠지만 진통 중인 아내를 두고 나온 탓인지 궁금증은 더욱 심해졌다. 분위기는 하늘이 만들어 주었다. 한참 촬영을 하고 있는데 맑은 날씨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모두들 촬영기재를 등에 메고 비를 피해 뛰기 시작했다. 검은 구름이 천둥 번개와 함께 몰려왔다.

순식간에 세상이 캄캄해 졌다.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공포에 질려 눈들이 동그래졌다. 하늘을 올려보다가 깜짝 놀라 서로를 보기도 했다. 이래저래 ‘죄 많은 인생들’이라 겁이 나기 시작한 것들처럼 보였다. 나 역시 이상하게 뭔가가 ‘캥기는’ 게 있었다.

캄캄한 하늘이 나에게 번개를 내려칠 듯 ‘우다탕- 쾅 쾅’ 천둥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겁에 질려 고개를 떨궜다. 그런데 문득 천둥소리를 뚫고 아내의 진통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진통하고 있는 아내의 얼굴이 검은 하늘 위로 갑자기 나타나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급히 산사로 달려가 서울 장거리 전화를 신청했다.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 아내가 죽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천둥 번개는 계속 천지를 흔들고 있었다.

‘벼락 맞아 죽기’ 전에 빨리 내 죄를 회개하고 싶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이 현장의 나였다. 영화에 미쳐 1년 내내 집이라고는 가끔 들어가서 아이 둘만 덜커덩 낳게 하고 생쥐같이 쏘다니다가 비에 맞아 촬영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꼴이 가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죄라면 죄였던 것이다. 이 생각을 하는 순간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세상이 밝아졌다. 나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봤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게 변하고 있었다. 나뭇잎들이 빗방울과 함께 반짝이기 시작했다.

“해 나왔다. 빨리 내려와요.”

사람들이 산 아래에서 나를 부르는 사이에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스님이 외쳤다. “서울 장거리 신청한 사람. 전화 나왔어요.” 수화기를 날듯이 들었다.

“축하드려요. 아들이에요.”

아들을 또 얻은 것이다. 역시 아내는 대단한 사람이다. 나 없이도 아들을 둘씩이나 낳았으니 말이다. 나는 이러한 연유로 둘째의 이름을 계룡이라고 짓고 싶었다. 그러나 집안 어른들의 뜻을 따라 준원이라 지었다.

준원은 나의 발가락은 닮지 않았지만 커서 영화를 하고 있다. 나보다 훨씬 재주가 있어서 영화 <괴물> 시나리오도 쓰고 감독 준비하느라 얼굴을 볼 수가 없다. 그 녀석이 곧 결혼을 하겠다는데 나같이 제 색시 고생시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배우시절, 나는 두 아이들이 크면서 정신적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다. 첫째 상원이가 돌이 지나자 곧 나를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아빠, 엄마를 판단하게 된 것이다. 문제가 생겼다. 배우는 카메라 앞에 서기 2시간 전에 분장을 마쳐야한다. 화장품이 얼굴에 스며들어 표시가 안 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당연히 집에서 분장을 하여야 된다. 엄마 화장대 앞에 앉아서 엄마와 같이 화장하는 아빠를 보게 될 때 ‘왜 아빠가 남잔데 화장을 할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혼란에 빠질 상원의 얼굴이 거울 너머로 보였다.

그가 더 성장하여 아빠의 직업을 알게 되고 그 이유를 알게 될 때까지 분장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특수 분장이 필요한 경우는 현장에 더 일찍 도착하였다. 스태프들과 다른 배우들은 내가 메이크업을 안 해도 얼굴에 자신이 있어서 그렇다고 오해하였다. 시간이 지나며 얼굴 색깔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검사 결과 얼굴 피부 속이 불에 지진 것처럼 상처투성이었다. 강한 조명과 태양열에 지져져 얼굴 속을 다 뒤집지 않는 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아빠로서의 정체성을 얻는 대가로서 좀 혹독한 것이긴 했다.

두 아이들을 촬영현장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아이들이 영화작업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있기 전까지. 아빠가 남이 보는 앞에서 다투고, 이상한 말을 하고, 다른 여자와 이야기하고, 심지어 껴안기까지 하는 것을 그들은 이해 할 수 없었다.

나는 영화출연 결정을 아뼁?함께 하였다. 돈보다 귀한 것은 작품이었다. 자연히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편하지 않았다. 수많은 광고회사에서 CF모델을 제안하였다. 아내와 두 아이들과 상의하였다. 아이들은 어렸지만 그들의 의견을 꼭 물었다. 아이들은 아빠가 이 되어 TV와 신문에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국세청에서 세금을 어머어마하게 인정과세로 두들겼다. 세금신고를 제대로 안하였다는 것이다. 이의가 있으면 제기하라고 하였다. 즉각 이의제기를 하였다. 국세청에서 조사를 시작했다. 얼마 후 국세청차장이 전화를 하여 식사를 하자고 하였다. 그 자리에서 나에게 물었다.

“왜 CF 활동을 안 하십니까?”

나의 명성은 영화를 통하여 대중이 만들어 준 것이므로 그것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비록 경제적 여유로움은 없으나 그보다 더 큰 마음의 편안함은 있는 것이다. 아내와 자식들은 잘 참아 주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아이들은 큰다. 핏덩어리 같던 아이들이 자라 오늘 날, 거대한 체구와 기술을 지닌 세계의 장사들 앞에 선다. 나는 믿는다. 그들은 두려워 하되 물러서지 않을 것이고 승부를 가르되 정의로울 것이다. 9번 싸워 9번을 이겨 낸 그들을 보며 문득 떠오른 단상이다.

아이들은, 꿈과 믿음을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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