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울고 있었다. 그간의 부진으로 겪은 고통, 그리고 마침내 해냈다는 감격이 고스란히 담긴 사나이의 뜨거운 눈물이었다. 베이징올림픽 야구 예선 7경기 22타수 3안타(0.136). ‘국민타자’ 이승엽(32ㆍ요미우리)의 초라한 성적표였다.
22일 베이징 우커송 야구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역전 결승 투런포를 때려낸 이승엽은 후배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덕아웃에 들어온 뒤 혼자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경기 후 “왜 울었냐”는 질문에 그는 “너무 미안해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또다시 눈가가 붉어졌다. “후배들이 울고 있는 걸 보니까…. 4번 타자인데 너무 부진해서, 너무 미안해서요.”
마치 8년전 시계를 그대로 되돌린 듯했다. 장소만 시드니에서 베이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승리의 주역은 역시 4번 타자 이승엽이었다. 이번 대회 들어 극심한 부진을 겪으며 따가운 눈총을 받은 그였지만 ‘원샷, 원킬’의 동물적인 해결사 본능은 그대로 살아있었다.
지난달 30일 대표팀 합류를 위해 귀국하면서 “올림픽에서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겠다”던 장담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이승엽은 이날도 3번째 타석까지 삼진 2개에 병살타 1개에 그쳤다.
그러나 ‘국민타자’ 이승엽은 결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온 국민이 그렇게 애타게 바라던 순간, 이승엽의 홈런포는 어김없이 불을 뿜었다. 2-2로 맞선 8회말 1사 1루에서 이승엽은 2-1의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이와세의 5구째 138㎞짜리 직구를 그대로 걷어 올려 오른쪽 담장을 훌쩍 넘겼다. 일본이 자랑하는 최고 마무리 이와세는 이승엽의 방망이가 돌아가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하고 고개를 떨궜다.
4-2 역전. 8년 전 시드니 대회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역전 결승타를 날린 것도 8회였다. 우커송 구장은 태극기 물결과 ‘대~한민국’의 함성에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일본 덕아웃과 관중석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한국은 기세를 몰아 김동주와 고영민, 강민호의 집중 안타를 묶어 순식간에 2점을 보태며 일본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다. 김경문 감독은 6-2로 앞선 9회 ‘승리 카드’ 윤석민을 투입, 의욕을 상실한 일본 타선을 1이닝 무실점으로 막고 결승행을 확정지었다.
지난 16일 일본전에서 5와3분의1이닝 3피안타 7탈삼진 1실점의 호투로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던 김광현은 8이닝 6피안타 5탈삼진 2실점(1실점)의 완벽한 피칭을 펼쳐 ‘일본 킬러’의 명성을 재확인했다.
한국은 2000년 시드니 대회 3ㆍ4위 결정전 이후 올림픽 9연승의 신바람을 내며 사상 처음으로 결승에 올랐다. 또한 올림픽 본선 일본전 4연승으로 일본의 콧대를 납작하게 했다. 한국은 이어 열린 4강전에서 미국을 10-2로 대파한 쿠바와 23일 오후 7시(한국시간) 대망의 결승전을 치른다.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버린 이승엽이 그 선봉에 선다.
베이징=이승택 기자 l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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