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을유문화사를 창립해 우리나라 출판계를 이끌어온 은석(隱石) 정진숙 을유문화사 회장이 22일 오후 3시23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96세.
1912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휘문고보를 나와 보성전문학교를 다니다 35년 중퇴한 뒤 조흥은행의 전신인 동일은행에서 근무하며 은행가의 길을 걷었다. 고인은 45년 해방을 맞으면서 ‘출판입국’의 뜻을 세우고 그 해 12월 평소 뜻을 같이하던 조풍연(작가), 윤석중(아동문학가), 민병도(전 한국은행 총재) 등 4인과 함께 을유문화사를 창립했다. 을유문화사란 이름은 45년 을유년에 세웠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한국전쟁 중에 북한군에 의해 사무실이 타는 바람에 거액의 빚더미에 나앉기도 했고, 창립동인들이 흩어지는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그는 52년 을유문화사 사장으로 취임한 뒤 한글학회의 <우리말 큰사전> (전 6권ㆍ1947~1957), 진단학회의 <한국사> (전6권ㆍ1959~1965)를 펴내는 등 뚜렷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시대를 선도하는 책들을 펴냈다. “출판은 기업 이상의 것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출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녔던 고인은 양주동의 <여요전주> 같은 학술서적을 양장본으로 내는 등 수많은 양서(良書)들을 펴냈다. 또한 ‘을유문고’를 통해 본격적인 문고본 시대를 열어 지식 대중화에 앞장섰으며 ‘세계문학전집’ ‘현대미국단편소설선집’ 등을 발간하면서 일본판을 중역하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철저한 원어 중심의 완역주의 원칙을 선보이기도 했다. 여요전주> 한국사> 우리말>
출판인들의 모임인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창립의 산파역을 했으며 63~64년, 66~73년, 79년 등 세 차례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을 지냈다. 또한 교보문고 설립,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제정 등에도 간여하는 등 출판문화 진흥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출판분야 외에 중앙박물관협회 회장,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위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등도 지냈다.
이 같은 다양한 분야의 공로를 인정받아 금관문화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서울시문화상 등을 받았다. 창립 60주년을 맞은 2005년에는 국내 300여 단행본 출판사 대표들의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로부터 ‘아름다운 출판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고인은 지난해 8월 펴낸 자서전 <출판인 정진숙> 에서 “출판을 천직으로 삼게 된 일은 더할 나위 없는 운명이고 축복이었다. 숱한 삶의 모습들 가운데 책과 함께 살아가는 인생처럼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영원한 출판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회고했다. 출판인>
60년대 중반 고인과 함께 을유문화사에 근무했던 김경희 지식산업사 대표는 “몇 차례의 입각 요청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출판 사업이라는 한우물만 팠던 분”이라며 “우리 출판계의 지도자일 뿐 아니라 문화계의 지도자이기도 했던 큰 어른이 가셨다”고 안타까워했다.
유족으로는 낙영(재미), 필영(을유문화사 이사), 무영(개인사업), 해영(개인사업), 지영(을유문화사 대표)씨 등 4남 1녀. 빈소는 서울대 병원. 발인은 26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 화성시 팔탄면 월문리 선영. (02)733-8153, (02)2072-2091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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