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유럽적 보편주의' 베푸는 듯 강요하는 강자의 논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유럽적 보편주의' 베푸는 듯 강요하는 강자의 논리

입력
2008.08.24 23:16
0 0

/이마뉴얼 월러스틴 지음ㆍ김재오 옮김/창비 발행ㆍ172쪽ㆍ1만원

신대륙 정복에 나선 에스파냐인들이 아즈텍과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뒤 이 지역 주민들의 노동력을 강압적으로 착취했던 16세기. 에스파냐에서는 폭압적 식민지 경영방식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다. 철학자 세뿔베다는 아메리카인들이 문맹의 야만인이라는 점, 우상숭배와 인신공양 관습에 대해 처벌해야 한다는 점, 이 관습으로 인한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참사를 방지해야 한다는 점, 가톨릭 신부들을 보호해 기독교 전파를 꾀해야 한다는 점을 이유로 정당성을 옹호한다.

반면 신부 라스 까싸스는 이 논거는 소수의 악행을 정치구조의 문제로 일반화하고 있으며, 기독교 교리를 들어본 적조차 없는 사람들에 대해 무슨 권리로 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겠느냐며 반박한다.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78)은 식민지경영을 둘러싸고 에스파냐에서 벌어진 16세기의 '세뿔베다-라스 까사스' 논쟁은 21세기적인 논쟁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세뿔베다의 논리를 문명화된 지역이 비문명화된 지역에 대한 개입을 정당화하려는 근대 이후 강자들의 전형적 논리로 본다.

이는 "이전에 존재한 바 없는 약간의 정의 내지 행복, 지적계몽의 여명, 의무감의 각성을 남겨놓은 것이 인도에서의 영국의 명분"이라며 인도지배를 정당성을 강변한 20세기초 인도총독 커즌경의 말이나 인권을 옹호하고 민주주의를 증진시킨다는 명목으로 이라크를 군사적으로 침범하고 시리아, 이란, 북한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오늘날 미국과 영국 등의 행태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

인권옹호와 민주주의 증진이라는 명제는 거창한 명분과 달리 실상은 근대세계체제의 강자들이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라는 것이 월러스틴의 생각. 그는 이런 가치들을 '유럽적 보편주의'(European universalism)라고 명명하며, 이 같은 보편적 가치가 과연 존재하는지를 묻고, 보편적 가치에 은밀히 관여하고 그것을 이행하는 힘있는 자들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것을 요구한다.

유럽적 보편주의는 동양을 덜 진보되고 야만적이고 몰개성적이고 정적으로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의 쌍생아다. 현재 우리가 유럽적 보편주의의 시기의 끝에 와 있다고 보는 저자는 따라서 지식인들에게 약자에 대한 강자의 개입을 위한 근거들을 객관적이고 회의적으로 볼 수 있는 '보편적 보편주의'(universal universalism) 로 무장한 비(非) 오리엔탈리스트가 되라고 주문한다.

이런 태도는 세계체제의 불평등의 결실을 누리고 있는 강자들로부터 인기가 있을 리 없지만, 월러스틴은 유럽적 보편주의와 보편적 보편주의의 싸움은 앞으로 25~50년 사이에 진입하게 될 미래의 세계체제가 어떻게 구성될지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예고한다. 저자가 2004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