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사라 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사라 제

입력
2008.08.24 23:16
0 0

사라 제(Sara Szeㆍ39)는 수천 개의 일상 사물들-플라스틱 파이프, 스티로폼, 집게, 사다리, 잔디, 화분, 어항 등을 망라하는-을 조합해 귀신들린 듯 뵈는 장소에 특정적 조형물을 설치하는 일로 명성을 얻은 작가다.

그의 작품은 묘사하기가 쉽지 않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정신세계의 어떤 에너지가 잡다한 물건들에 깃들어 일순 실존적 형태로 현현한 모습 같다"고나 할까? 완성된 작품은 조각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작업의 아이디어는 늘 회화적 상상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색채, 동세, 경계, 구성 등을 고려해가며, 물감과 붓으로 캔버스에 조형적 질서를 구축하듯, 3차원의 공간에 일상 사물들로 회화적 질서를 구현해나간다는 것.

특정 장소에 작품을 설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면, 작가는 우선 공간을 해석한다. 그리고 일상 사물들을 조합해 "어떤 하찮아 뵈는 동세의 순간"을 찾아내고자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각각의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이해하는 것이다.

작품의 전체적 질서에 녹아들면서도 언제나 개별 사물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바라는 작가는, 오브제를 살펴보며, 그 내재적 구조가 지니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다. 그리고 각각의 물건이 구조적으로 버틸 수 있는 어떤 한계점을 찾아 물리적인 변형을 가하며, 광괴한 조형 질서를 잡아나간다.

이러한 작업 과정은 마치 배양지에서 세균이 번식해나가며 일련의 패턴을 만드는 모습과 유사하다. 일단 초기 단계에서 어떤 조형적 특성이 형성되면, 그 이후엔 작업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기본 구조가 어느 정도 형성되면, 작품 제작은 기상 현상처럼 전개된다. 하지만, 언제나 작가는 모호한 순간을 포착하려 애쓰기 때문에 결과물을 보면, 전체를 아우르는 기의 흐름이 상승하는지, 하강하는지, 아니면 좌회전하는지 우회전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대개 건축 재료가 아닌 일상 사물들로, 자연의 질서를 닮은 듯하면서도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아 뵈는 구조물을, 그것도 안전이 보장되는 수준으로 구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규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건축 공사장의 십장을 연상케 하는 힘 좋은 남자 조수 두 명과 함께 일하는 작가가, 대형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데 꼬박 한 달이 걸린다.

작가의 조각 설치물은, 전시 기간에만 일시적으로 구현되기 때문에 소장이 불가능하다. 물론 작가는 작품을 해체한 뒤 제작에 동원된 일상 사물들을 간직한다. 그리고 기존 작품을 다른 장소에 재전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작품을 재설치할 때에도 거의 신작을 제작하는 것에 육박하는 에너지가 소모된다.

기본 구조를 재활용해 작품을 설치하지만, 공간이 다르므로 구조적 변경이 불가피하고, 또 작가가 각 지역에서 유통되는 레디메이드 오브제로 기존 사물을 대체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고로 한 작품은, 이곳저곳의 전시를 거치를 과정에서, 다국적 사물의 집합체로 변모하게 된다.)

미술ㆍ디자인 평론가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