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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아이팟! 작지만 큰 문화혁명, 애플의 마법에 'I'들 팍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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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아이팟! 작지만 큰 문화혁명, 애플의 마법에 'I'들 팍 꽂혔다

입력
2008.08.24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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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103.5mm 세로 61.8mm 두께 10.5mm 무게 140g. 법랑 입힌 도자기처럼 절제된 디자인에 손바닥에 꽉 차는 단단한 중량감. 바둑돌의 부드러운 차가움과 백열전구의 따뜻한 기운이 함께 도는 입방체. 애플의 아이팟(iPod)이다.

이 단순한 전자제품이 세상을 사로잡았다. 여기서 '사로잡았다'는 말은 판매량 같은 숫자로 치환되는 산업적 개념이 아니다. 아이팟으로 놀고 아이팟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며 아이팟으로 타인과 소통하는 문화의 탄생을 의미한다. '애플홀릭(Appleholic)'이라 칭함이 마땅한 두터운 마니아층이 출현한 것. 아이팟은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 나를 빨아들이는 단순함

국적과 세대, 소득수준을 뛰어넘어 애플이 세계인을 사로잡은 매력은 디자인이다. 애플은 기존 전자제품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복잡한 기능을 강조하는 첨단의 이미지를 버리고 단순함과 은은함을 강조하는 미니멀리즘을 채택했다.

심플함은 시간 지나면 장난감처럼 보이는 전자제품의 한계에서 세련됨을 추구하는 성인 고객들의 욕구를 해방시켰다. 심플(단순함)은 럭셔리(고급스러움), 그리고 유니크(독특함)의 동의어로 인식됐다.

애플의 미니멀리즘은 동양적인 것에 심취한 CEO 스티브 잡스의 정신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아이팟의 디자이너인 조나단 아이브는 변기나 세면대를 만들던 욕실 디자이너 출신. 잡스는 그를 과감히 발탁, 여백과 곡선이 특징인 아이팟을 탄생케 했다.

매킨토시 PC에서 마니아층을 형성했던 애플의 미니멀리즘은 아이팟에 이르러 대중적으로 폭발했다. 아이팟 이후 미니멀리즘은 세상 모든 전자제품 디자인의 화두가 됐다.

■ 재생목록주의 - '나'를 담는 아이팟

아이팟을 비롯해 애플 제품의 특징은 대량 생산된 공산품이면서도 철저하게 개인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누구나 맥북(애플의 노트북)과 아이팟을 살 수 있지만, 누가 쓰느냐에 따라 애플 제품은 세상에서 유일한 물건이 된다.

이는 아이튠즈 등 애플 제품의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이 세분화, 개인화에 초점을 맞춰 설계됐기 때문이다. 가장 단순한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으므로 누구나 자신에 맞춰 정교하게 조직할 수 있다.

칼럼니스트 스테플 어브리는 이를 '재생목록주의(Playlistism)'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는 아이팟에 담긴 재생목록(Playlist)이 옷차림이나 독서 취향보다 한 개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고 설명한다.

음악은 개인의 영혼 가장 깊은 곳에서 재생되는 문화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팟 음악 라이브러리의 디렉토리 구성과 각 음악에 매긴 별점은 곧 그 사람의 인격과 정서다. 사람들은 이제 종교나 소득수준이 아니라 '재생목록'으로 서로 그룹을 짓고 또 차별한다.

■ 진화하는 마니아를 생산하다

맥북이나 아이팟 같은 제품을 '컬트 브랜드'라고 부른다.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제품이 파생하는 콘텐츠와 라이프스타일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마니아를 창출하는 브랜드를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또 제품을 열정적으로 홍보하는 선교사 역할도 자진해 맡는다.

세련된 도시인의 상징이 된 아이팟의 하얀색 이어폰줄로, 서로 유대감을 확인하며 애플의 세계를 확장시켜 나간다. 엔터테인먼트를 기반으로 한 거대한 문화적 네트워크. 아이팟은 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출입증 같은 것이다.

아이팟 터치(신형 아이팟)와 아이폰(애플의 휴대전화) 등 휴대 인터넷 기술을 바탕으로 한 신제품들은 애플 마니아들을 무선으로 서로 연결하는 새로운 시대도 예고하고 있다.

블루투스와 와이브로 기술이 접목된 애플의 세상은, 상대방의 재생목록을 자신의 기기로 검색ㆍ재생하는 문화적 매트릭스를 가능케 할 것이다. 애플은 그렇게 스스로 진화하는 마니아들의 문화적 공동체를 만들었다.

● 음향서 패션·디자인·車까지

아이팟을 구매한 사람 5명 중 3명 이상이 전용 스피커와 같은 액세서리를 샀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아이팟의 확장성은 뛰어나다. 미디어간 컨버전스(융합)가 아이팟을 비롯한 애플 상품의 핵심 속성이기 때문이다. 아이팟의 액세서리 시장만 연간 10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

액세서리 시장의 확대 뿐 아니라 아이팟 사용자가 늘면서 폐쇄적인 디지털 음원시장도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손바닥보다 작은 이 미디어 플레이어가 라이프 스타일을 어떻게 바꾸어 가고 있을까.

■ 음향 시스템

기본적으로 압축파일로 변화된 음원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감상하는 플레이어인 아이팟은 몇 가지 장비만 갖추면 CD플레이어나 여타 재생장치 없이 음악과 영상을 고품격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능이 내재돼 있다.

例쳄?아이팟에 저장된 동영상을 TV로 재생할 수 있는 애플TV를 만들고, 세계적인 브랜드들도 앞다퉈 아이팟에 가장 적합한 음향장비들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오직 아이팟을 위한 100여만원에 가까운 B&W의 스피커, 아이팟의 저음 보강에 초점을 맞춘 20여만원의 보스 헤드폰 등이 휴대성 강한 홈오디오 시스템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자극한다.

■ 패션

다양한 색깔의 제품을 선보인 아이팟 미니 모델 덕분에 아이팟의 확장은 미디어에서 그치지 않고 패션의 영역까지 뻗어갔다.

아이팟과 연동해 조깅할 때 기록을 체크할 수 있는 신발을 내놓은 나이키, 아이팟 전용 주머니가 달린 청바지를 만들고 '아이팟 진'이라 명명한 리바이스, 아이팟을 위한 케이스를 내놓은 돌체 앤 가바나, 구찌, 디오르, 펜디 등 '애플홀릭'들을 위한 제품은 무궁무진하게 쏟아졌다.

일본의 아티스트 요시모토 나라는 자신의 그림을 아이팟 스킨과 화면보호기 등으로 제공한다.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라거펠드는 한 인터뷰에서 "아이팟 기술이 펜디의 아이팟 전용 가방을 만드는 계기가 됐고 아이팟의 모양과 재질 역시 전반적으로 패션업계에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 자동차

보수적인 산업영역으로 꼽히는 자동차 업계에도 '애플홀릭'을 위한 편의장비가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미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되는 차량의 절반 가량에 카오디오 시스템으로 바로 아이팟을 움직이는 장치가 탑재됐을 정도다.

최근 출시된 국내 준중형차 모델에도 아이팟 장치가 기본품목으로 장착됐다. GM, 혼다, BMW 등은 아이팟의 디스플레이 지원장치도 지원한다.

■ 음악시장

애플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을 저평가하고 있는 듯하다. 국내에서 아이팟 전용 음악파일 프로그램 아이튠즈를 통한 음원 구입이 여전히 불가능하고, 불과 두달여 전에야 아이팟터치용 한글타자 프로그램을 출시한 애플은 한국의 '애플홀릭'에게 섭섭한 감정을 심어준 게 사실이다.

아이팟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은 사실 이 같은 애플의 정책이 아니라 국내 음원사들의 폐쇄적 음원판매 방식이었다. 대부분의 음원사들은 그동안 디지털저작권관리(DRMㆍDisgital Right Management)의 일환으로 구매한 음원을 특정 플레이어에서만 재생할 수 있도록 해왔다.

이 '특정 플레이어'에서 아이팟이 하나같이 제외되어 있었고 이로 인해 아이팟 사용자는 오히려 불법 다운로드의 유혹을 더 많이 받아온 게 사실. 하지만 최근 들어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이동통신사와 주요 음악 포털사이트들이 DRM을 해제한 상품을 내놓으며 아이팟 소비자들을 손짓하고 있다. DRM 해제 분위기로 디지털 음원시장은 보다 활력을 얻게 된 셈이다.

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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