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을 만들어낸 여권 내 친이 그룹은 6개월이란 시간을 거치며 여러 갈래로 분화했다.
‘주류의 핵’은 누가 뭐래도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과 이 대통령의 ‘멘토’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중심이 된 원로 그룹이다. 이 의원은 드러나지 않게 여권 내 조정과 중재 역할을 하고 있고, 최 위원장 역시 이 대통령의 굳건한 신임을 받고 있다.
여권의 지난 6개월은 이들에 대한 도전과 응전의 시간이었대도 과언은 아니다. 4월 총선 직전 수도권 소장파들이 “이 의원의 2선 후퇴”를 요구하고 나선 이른바‘55인 항명 파동’이 있었다. 쇠고기 파동 와중에 정두언 의원이 “이 의원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고 공개 비판하며 칼을 뽑았다.
하지만 쿠데타는 번번이 실패했다. 역설적으로 원로 그룹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7ㆍ3전당대회에서 박희태 대표 체제를 만든 것도 기실 원로 그룹의 힘이었다.
친이의 한축 이재오 의원의 부침은 극적이다. 정권 출범 초만 해도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며 원로 그룹과 어깨를 겨뤘던 그다. 하지만 18대 총선에서 낙선하며 급전직하했고, 쫓기듯 미국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그는 ‘꺼진 불’이 아니다. 전당대회 이후 공성진 최고위원, 안경률 사무총장 등 여권 내‘이재오계’의 약진은 여전한 그의 영향력을 보여 준다.
정두언 의원은 지금 잠수 중이다.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이상득 의원을 겨냥한 여러 차례의 쿠데타를 주도한 그다. “청와대의 신임을 완전히 잃었다”“완전히 눈밖에 난 것은 아니고, 자숙 기간을 준 것”등의 평가가 공존한다.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으로 대표되는 수도권 소장파의 당내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주류도, 비주류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로 내몰렸다.
반면 경선 당시 중립을 지켰던 홍준표 의원과 임태희 의원이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맡으면서 신실세로 부상했다.
총선 전 까지만 해도 치열하게 각을 세워온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비주류 그룹은 친박 복당 조치 이후 차기를 관망하며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 친이 세력 내 이탈 조짐이 나타나는 점은 주목해 봐야 한다. 주요 당직에서 배제된 친이 진영 내 중도성향 인사들이 친박, 정몽준 최고위원 진영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권 내 권력지도가 복잡해질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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