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국의 스티비 원더'라고 부른다. 매력적인 비음과 몸에 척척 감기는 리듬으로 '한국적 흑인음악'을 대중화시키며 1990년대를 강타했던 이 남자.
1995년 280만장을 팔아치운 3집 앨범 '잘못된 만남'으로 '국내 앨범 최다 판매' 기네스 기록을 갖고 있는 그는 대중음악이 가장 찬란하게 꽃을 피우던 시절, 그 정점에 섰던 스타 중의 스타였다.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 둘이 된 가수 김건모.
작곡가 김창환과 재결합해 만든 열두 번째 앨범 '소울 그루브(Soul Groove)'로 다시 돌아온 그를 실비 내리던 날 만났다. 몸짓과 표정과 재연이 의사표현의 3할을 차지하는 그와의 대화는 곧잘 한 편의 만담 같았다. 농담과 진담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 요즘 TV만 틀면 나와요. 어떠세요? 오랜만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좋죠, 바쁘니까. 13년 만에 창환이 형이랑 다시 만났잖아요. 난 너무 편하고, 좋아. 음악 만들어주지, 옛날엔 내가 막 다 고민했어야 하잖아요. 이번엔 뭘로 갈까. 이제 난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창환이 형이 만들어주는 걸 잘만 부르면 되니까, 너무 편하죠."
- 이번 앨범에 대한 주변 반응은 어때요?
"좋아요. 나쁘다는 반응은 없더라구요. 역시 창환이 형하고 잘 맞는다, 그런 얘기들이 많아서 아주 기분 좋고. 제가 이번에 타이틀곡 '키스'로 펑키를 처음 해봤어요. 레이브, 하우스, 레게는 전에 했지만. 펑키는 신인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아주 어려운 장르예요.
왜? 연륜이 있어야 되거든요. (키스의 도입부를 불러보이며) 이게 음은 높지만 힘이 들어가면 안 되는 노래예요. 10년 정도는 하고 나서 그런 음악을 해야 듣는 사람도 편하고, 하는 사람도 편한데, 다행히 쉽게 받아들여져서 너무 고마워요."
- 김창환씨 하면 1집부터 3집까지 함께하면서 오늘날의 김건모를 만들어준 작곡가잖아요. 그런데 얼마나 못살게 굴었길래 그렇게 도망쳤어요?
"못살게 군 게 아니라 나한테 좀 엄하게 했어요. 술도 못 먹게 하고. 창환이 형이 그땐 술을 안 먹을 때라 술 먹는 사람들을 이해를 못했어요. 음악, 집, 음악, 집. 근데 난 스트레스를 풀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야, 너 스케줄 끝나면 집에 가야지 왜 안 가고 술을 먹냐' 이래요.
내가 어디 가면 그걸 다 알고 있고. 그때 우린 나이트클럽이 한창 재밌을 땐데, 어떻게 알고 '왜 나이트클럽에 가 있냐'고 혼내는 거예요. 그걸 한 3년 하다 보니까 이건 아니다 싶더라구요. 계약이 끝나는데, 에이, 그냥 독립하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13년. 혼자 잘 버텼죠."
- 심지어 연애도 못하게 했다는 소문이던데요.
"네. '너 성공할래, 사랑할래?' 묻더라구요. '네, 성공하겠습니다' 그랬죠. 그러곤 몰래 만났어요. 근데 난 몰래 하는 게 안 돼요. 다 까놓고 하는 스타일이어서. 그래서 헤어졌죠."
- 독립할 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어서 그랬던 걸 텐데, 이번에 왜 다시 돌아간 거예요?
"독립하고 처음 얼마간은 잘 됐죠. 창환이 형한테 배운 게 있었으니까.(4집의 '스피드'와 5집의 '당신만이' 같은 곡들은 예전 못잖게 히트했다.) 무엇보다도 일단 좀 자유스럽고 싶었어요.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아, 창환이 형이랑 같이 할 때가 좋았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리고 13년이란 세월을 잘 버텼는데, 마지막 앨범 같은 경우는 음악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회사에서 만든 거라 나를 못 찾았어요. 나를 주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돈을 얼마를 벌어올까만 생각하고. '오케이, 오케이, 너네랑 도저히 더는 못하겠다.' 그러던 차에 창환이 형이 어디서 술을 먹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기러기 아빠잖아요. 자기도 외롭지. 그래서 술자리로 달려갔죠. 가서 (몸을 흔들며) '아이 형, 다시 하자' 이러면서 일단 벽을 허물고, 그렇게 자주 보기 시작하니까 또 풀어지더라구요."
- 좀 겁나지 않았어요? '이 자식, 그렇게 등 돌릴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왜 이래!' 이런 무안한 반응을 보일 수도 있잖아요. 김창환씨도 몇 년간 결별의 충격에서 못 벗어났다던데.
"그런 건 없었어요. 내가 만약에 그렇게 머리 굴리는 사람이었으면 창환이 형도 날 안 받아들였을 거예요. 우리가 같은 김씨거든요, 금영 김씨라고. 김재규가 있고, 김진규 감독,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이 있어요. 우리 성격은 모 아니면 도예요. 일단 창환이 형도 내가 굉장히 망설이다 얘기했다는 걸 알고, 그러니까 '그래, 해보자' 이렇게 된 거죠.
그럼 난 어떻게 해야 되나. 다시 신인 때로 돌아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나 두 달 동안 매일 연습실 나와서 연습했어요. 혼자서. 고생 많이 했어요, 나."
- '명콤비가 다시 만났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것이냐' 이런 시선이 많아요. 부담스럽지 않아요?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부터 그런 건 버횡楮? '잘못된 만남' 같은 빅 히트가 아니라 역시 김건모랑 김창환이랑 잘 어울린다는 소리만 들으면 다음 앨범부터는 쉽게 간다, 이번 앨범의 '컨셉'은 그거예요.
사람들한테 김건모랑 김창환이 다시 뭉쳤다는 걸 알리고, 그리고 2, 3집 때 그 목소리를 좀 내고, 지금 30대가 된 옛 팬들이 2, 3집 때 그 느낌을 좀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그 정도만 하고 다음 앨범 준비한다는 거죠.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난 계속 업(up)이에요."
- 근데 막상 음반은 6,000여장밖에 안 팔렸어요.
"그건 신경 안 써요. '잘못된 만남' 280만장 팔았을 때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고, 연예인에 대해 약간 우러러보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던 때니까. 그땐 놀 게 없었잖아요,
CD 사서 '마이마이'(카세트 플레이어)로 음악 듣는 것 말곤. 하지만 지금은 할 게 너무 많기 때문에, 음악은 예를 들면 나이키 매장에 새로 나온 모델, 그 정도예요. 아, 나왔네. 괜찮네, 아니네, 그 둘 중의 하나죠.
예전 우리처럼 순수하고 소박하게 눈물을 흘리면서 음악을 듣는 세대가 아니에요. 난 지금도 스티비 원더 CD를 보면 가슴이 떨려요. 하지만 그런 감각의 소유자들이 이젠 거의 없는 거죠. 어떻게 보면 음악 하기 힘든데, 그걸 이용하면 언젠가 대박이 날 수도 있어요.
어떻게 '되고송'(SKT의 광고 음악)이 국민가요가 돼요. 내가 불렀지만 그게 노래 아니잖아. 그게 무슨 노래야. 그런데 그렇게 돼가고 있는 거예요.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 한번 터질 날이 온다니까요."
'잘못된 만남' 이후 13년. 그에게 좋았을 것 같은 일은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앨범이 부진했다. 가요순위 프로그램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고, 급기야 대대적인 방송 은퇴 선언으로 방송가를 발칵 뒤집어놓기까지 했다. 13년 전부는 아닐지라도, 국민가수의 몰락이라고 할 만한 긴 침체였다.
- 솔직히 말할게요. 전 지난 몇 년 동안은 김건모씨가 음반 내고 있는 줄도 몰랐어요.
"활동을 많이 안 했었죠. 하기도 싫고. 내 건강이나 관리하자 싶어 운동이나 하고 그랬어요. TV를 안 하니까 다들 잘 몰라요. 확실히 TV가 중요한 게, 별걸 안 하더라도 그냥 나오는 게 훨씬 낫지, TV 안 하고 콘서트만 해봤자 잘 몰라요.
그랬다가 창환이형을 만나면서 나의 온갖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에너지가 '이빠이' 충전됐어요. 그 전엔 완전히 방전된 상태였거든요. 배터리 없이."
-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요?
"힘들었죠. 왜냐면 음악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통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창환이 형처럼 나를 위해서 지켜주는 사람이. 그때 코스닥 상장이다 뭐다 해서 난리였는데, 사업하는 사람이랑 파트너가 되니까 이건 말이 안 통하더라구요.
'김건모씨는 왜 행사를 그렇게 높은 가격으로 불러요? 지금 때가 어려운데 낮춰서라도 여러 개를 해야죠' 그래요. 그럼 나는 그냥 욕을 해버리는 거죠. 그게 내 몸값인데, 너희는 돈만 벌면 그만이지만, 난 내 생명을 걸고 하는 건데.
그걸 이해를 못 하는 거예요. '그래 알았다. 끝.' 그런 것들. 내가 하기 싫은 것들을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고, 그러니까 내 표정도 굳어 있고, 대화를 해도 짜증나게 하고 그랬죠."
- 2003년에 방송 안 한다고 매체마다 은퇴 선언으로 도배를 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열심히 방송활동 하고 있어요.
"그걸로 후배들이 무지 놀려요. '그땐 언제고 이렇게 사악 슬그머니 들어오세요?' (코믹한 표정을 지으며) '야, 그럼 그 방법밖에 없는데 어떡해? 그럼 기자회견 하고 들어오냐?' 그러죠."(웃음)
- 그때 어떤 기분이었길래 방송 은퇴라는 그런 극약처방을 내린 거예요?
"너어~무 하기 싫었어요. 그때 PD들이 알맹이만 쪽 빨아먹고 버렸거든요. 신인은 계속 나오고, 잘 나가는 프로니까. 너 아니래도 할 애들 많다, 이런 식이었어요. '오케이. 나 안 해.' 그런데 좀 쉬고 나니까 마음이 괜찮아지더라구요. 그때 나한테 그렇게 했던 PD들, 내가 명단 다 적어놨어. 좌악 정리 들어갈 거예요."(웃음)
- 어떻게요?
"그 프로 안 하는 거죠, 뭐. 별 거 있어요."
- 김건모씨, 좋게 말하면 자유롭고, 솔직하게 말하면 무지 껄렁껄렁하잖아요. 종종 진지하지 않아 뵈고.
"네. 그렇죠. 좀 까칠하죠. 난 내 입으로 말하잖아요. 싸가지 없다고."
- 그런 면이 매력이기도 한데 한편으론 보기 불편하기도 해요.
"남들이 어떻게 보건 상관없고, 그건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벽이에요. 내가 만약 착한 이미지였으면 날 굉장히 우습게 봤을 거예요. 근데 내가 욕도 하고, 욱하니까 못 그러죠. 그건 나의 최소한의 보호막이에요. 날 함부로 보지 못하게. '저 새낀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 그러니까 난 편하죠.
그게 참 그렇다니까요. 봐요, 차인표. 처음에 이미지 잘못 잡아가지고 얼마나 답답하겠楮? 나랑 친군데, 욕도 못해, 술집도 못 가요. 내가 만약 압구정동 갤러리아 사거리에서 (갑자기 일어서 걸어나가더니 모션을 해보임) 담배 피우고, 침 뱉고, 어떤 여자랑 손을 잡고 걸어간다, 아무도 신경 안 써요. 그런데 차인표가 갤러리아 앞에서 담배 피우고 침 뱉는다.
그럼 난리 나는 거죠. 다들 휴대폰 꺼내서 사진 찍고, 인터넷에 올리고. 난 지금 이게 너무 편해요. 내가 약간 까칠하고 싸가지 없는 게 소문이 났기 때문에 내가 웬만큼 큰 잘못을 안 하는 이상, 사람들이 나를 그냥 보통사람들처럼 봐주는 거죠."
- 그동안 연예계, 가요계 풍토도 많이 달라졌을 거예요. 나이차가 많이 나는 후배들하고 같이 일해보니까 어때요?
"나는 내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피아노를 배운 거예요. 그래서 후배 가수들한테도 쓸데없이 헬스장 다니면서 근육 키우지 말고 악기를 배우라고 말해요. 그게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그냥 노래하면 카메라밖에 볼 게 없지만,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하면 일단 눈이 손과 피아노를 보죠, 귀가 목소리와 피아노 소리를 동시에 듣죠,
여러 가지 감각이 살아날 수밖에 없어요. 처음엔 힘들지만, 이걸 준비해놓으면 몸에 배는 순간부터 가수 수명이 10년 더 늘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외국애들은 다 하잖아요. 스팅이나 스티비 원더를 봐요.
그래서 난 후배들 만나면 '무조건 피아노 배우고, 기타도 좀 배우고 연습을 해라, 너네 서른 넘어서도 노래할 거 아니냐' 그러는데, 시간이 없대요. 시간이 없긴. 가지 마, 헬스장! 하물며 마흔 둘 먹은 나도 연습을 하는데."
- 나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이 들면서 음악적 감수성이 쇠락하는 느낌 안 들어요? 다른 분야와는 달리 음악에는 전성기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아요.
"확실히 맞아요, 그건. 느끼죠, 나도. 난 '잘못된 만남'에서 피크를 찍고 내려오는 상태인데, 그 내려오는 걸 잘 해야 돼요. 뒤로 물러나면 안 된다고. 난 이미 오래 전에 인기의 줄을 놨어요. 하지만 미사리로 가면 안돼.
선배들을 욕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발전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요즘 유행하는 음악이 뭐며, 유럽에서는 어떤 음악을 하고 있는지 계속 배워야 돼요. 분명히 쇠락이란 건 있지만, 난 내가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계속 준비하고 연습할 게 있으니까요. 나 얼마 전부터 기타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거든요. 난 뭐 배울 땐 또 독하게 해요. 아마 3년 뒤에는 다들 깜짝 놀랄 거예요. 기타리스트들과는 다른 운지로, 피아노 치듯이 기타를 칠 거니까."
- 늘 새로운 걸 배우려는 자세, 그게 가수활동 17년의 비결인가요?
"그렇죠. 마흔이 넘으면 마음이 달라져요. 하고 싶은 게 많아지고, 차분해지면서 충동적이지 않고, 시간을 아끼게 돼요. 39, 40까진 아니고, 41이 땡 치는 순간부터 달라지더라구요. 뭐가 이 안으로 쏵 들어와요. 철든다 그러나요. 그리고 특이한 점은 많이 흘려. 국 같은 거 먹을 때, 난 분명히 입에다 넣었는데, 입가로 주루룩 흘러요. 에이, 휴지 좀 줘봐."(웃음)
김건모를 신문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서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게 됐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 지지선언을 한 데 이어 총선 때는 서울 노원 병에 출마한 홍정욱 의원의 지지 유세를 했다. 얼마 전엔 검찰이 공개한 유명 가수들의 밤무대 출연료 명단에도 최상위권 랭크, 사회적 화제가 됐다. 사회인 김건모에 대해 물었다.
- 검찰이 공개한 가수들의 업소 출연료에 따르면 김건모씨는 회당 3,500만원을 받는 걸로 돼있어요. 진짜 그렇게 많이 받아요?
"네. 맞아요. 한 번에 3,500만원."
- 뭘 그렇게 많이 받아요? 지금도 그렇게 받아요?
(끄덕끄덕)
- 그런 기회가 많은가요?
"잘 없어요. 난 주로 (업소) 오픈 때. 그땐 밴드랑 같이 갔어요. 10인조에 한 사람당 100만원씩 나가고, 음향, 조명에 각각 250만원씩 주고, 나머지 2,000만원으로 소속사랑 내가 7:3으로 나누는 거예요. 내가 갖는 건 1,400만원 정도. 거기서 또 경비 나가고 세금 떼고 그러면 1,200만원 정도."
- 공개돼서 당황스럽지 않았어요? 영업비밀인데.
"에이, 아무 상관 없어요. 1,500만원으로 나갔으면 오히려 창피했겠죠. 그땐 바로 전화해서 정정보도 요청하는 거지.(웃음) 그건 가수로서의 내 자존심이니까. 내가 몸값을 내리는 순간, 자존심이 무너지는 거니까요."
- 지난 대선 때랑 총선 때 좀 놀랐어요. 이명박 후보 지지 선언에 홍정욱 의원 지원유세까지 했는데, 굉장히 뜻밖이었어요.
"그건 이유가 있어요. 내가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 복지회 가수부문 회장이에요. 또 가수노조 부위원장이고. 이명박 대통령 공약이 뭐였냐면, 연예인들에 대한 복지기금을 마련해준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지지한 거지, 내가 뭐 내 세금 빼주고 이런 걸 기대해서 한 건 절대 아니에요. 우리 모?대중문화예술인을 위해서 간 거죠. 우린 4대보험도 안 되는 비정규직들이에요. 지금은 쇠고기 파동 때문에 좀 힘들지만, 내년부터는 정말 좋아질 거라고 기대해요."
- 홍정욱 의원은 왜 지지했어요?
"정욱이는 우리 친한 후배들이랑 가까운 친구예요. 근데 되고 나서 술도 안 샀어."(웃음)
- 가수가 그런 정치적인 자리에 나서는 거, 부담스럽지 않아요?
"아니요. 내 소신을 밝히는 거고, 나 하나 위한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을 위한 거니까. 오히려 그렇게 나설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게 감사하죠. 음원 불법다운로드를 공약으로 내세운 다른 후보들도 도왔는데, 다행히 당선들이 됐어요.
확실하게 바로잡아준다고 약속을 했으니까, 이젠 정말 좋아질 거예요. 우리 후배들은 이제 조금만 참으면 돼요. 형만 믿으면 돼. 내가 맨날 놀고 있는 것 같아도 뒤에서 이런 거 다 하고 있다고. 내 입으로 말하기가 창피해서 그렇지, 이 형이 다 하고 있다고. 흐흐."
aurevoir@hk.co.kr사진=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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