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저녁 청와대 만찬에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당헌 8조를 인용하며 "당과 대통령은 공동 운명체"라고 얘기했다. 그는 이어 "당은 대통령을 위해, 대통령은 당을 위해"라며 건배도 제의했다. 하지만 이런 박 대표를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꽤 있었다.
당 안팎엔 최근 들어 당청 간 간극이 급격히 줄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대야 협상과정에서 보듯 청와대의 입김이 다방면에서 작용하는 장면이 많았다.
"당 우위는 허울일 뿐 당의 역할이 점점 왜소해지고 있다" "청와대가 일방독주한다"는 얘기들이 자자하다. 의원들 사이에선"이러다가 9월 정기국회에서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공교롭게도 기존 당청 분리 원칙을 손질해야 한다는 주창자가 박희태 대표였다. 그는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직후 "당권 대권 분리론은 아마추어적 발상이며, 노무현 대통령이 실패한 원인"이라며 "당과 대통령 관계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박 대표의 만찬 건배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은 이유다. 한 참석자는"당청 일체선언으로 들렸다"고 했다.
이 같은 흐름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진영은 박근혜 전 대표측이다. 박 전 대표측 한 중진 의원은 "제왕적 대통령을 막고, 당이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을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게 당권 대권 분리의 정신"이라며 "정당민주주의의 핵심인 만큼 이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증거는 없다. 박희태 대표측도 대통령의 당직 겸직 금지를 규정한 당헌 7조를 거론하며 "당권 대권 분리를 규정한 당헌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당청이 따로 논 노무현 정부를 타산지석 삼아 새로운 당청 관계의 모델을 찾으려는 것"이라는 말을 던지고 있다. '당청일체'도 아니고 '당청분리'도 아닌 새로운 형태를 찾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전례가 없다. 박 대표도 21일 한나라 포럼 초청 강연에서 "과거와 해외의 자료를 찾아봤지만 없었다. 청와대가 절대권력을 휘두르거나 반대로 참여정부 처럼 당과 청와대가 따로 논 경우뿐"이라고 토로했다. '도 아니면 모'였다는 얘기다.
한 당직자는 "당청이 협력하면서 견제하는 모델은 역학관계상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당분간 당이 청와대만 바라보는 행태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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