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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촛불의 광장 메달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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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촛불의 광장 메달의 광장

입력
2008.08.2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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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퍼레이드 국면'이 조성되고 있는 양상이다. 베이징 올림픽 폐막 다음날인 25일, 올림픽 선수단 해단식을 겸한 만찬행사가 끝난 뒤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이튿날에는 선수단 전원과 임원들을 초청한 청와대 오찬간담회가 열린다. 관계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대한체육회는 행사의 주역들이 함께 귀국하도록 하기 위해 경기가 끝난 메달리스트들을 베이징에 잡아 두고 있는 중이다.

선수단 퍼레이드는 낡은 발상

퍼레이드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메달이 많이 나왔다. 수영의 박태환, 역도의 장미란등 대한민국 스포츠사에 빛나는 메달이 많다. 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메달의 수보다 질적인 면에서 자축할 만한 성과를 이미 거두었다. 1948년 런던올림픽으로부터 따지면 올해는 올림픽 출전 60년이며, 이른바 '건국 60년'이다. 올림픽 출전사에 처음인 선수단 퍼레이드를 생각해 낼 법하다.

그러나 어쨌든 퍼레이드는 지나친 일이다. 누가 이런 것을 기획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한마디로 낡고 헌 발상이다. 따로 기획을 하지 않더라도 필요하면 퍼레이드든 무엇이든 축하 행사는 저절로 열릴 수 있으며 만들어질 수 있다. 정부나 대한체육회가 그런 점에 무감각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퍼레이드는 획일성 집단성이 그 바탕이며, 내용에는 시위 또는 과시, 동원과 참여, 선동의 요소가 작용한다. 퍼레이드의 기본개념은 일정한 길에서 통일된 복장을 하고 행진음악에 맞춰 행진 또는 이동하는 것이다. 퍼레이드의 근본 모델은 군사 행사다.

그런 점 때문에 퍼레이드 반대론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스포츠의 감동과 성취를 정권의 치적으로 삼거나 아직도 낮은 정권 지지율을 높이려는 국면 만회용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비난이다. 퍼레이드에는 어떤 식으로든 이명박 정부의 의식이 반영돼 있다. 그것을 잠재의식이라고 분석하든 강박관념이라고 비판하든 내용은 같다.

카 퍼레이드가 아니라 도보행진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집결지인 서울시청 앞 광장은 얼마 전까지도 촛불의 광장이었다. 퍼레이드는 '촛불의 광장'을 '메달의 광장'으로 만들려는 시도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런 반감에서 "선수단 퍼레이드에 촛불 들고 나가자. 그런 날은 촛불을 들든 횃불을 들든 불법이 아니잖느냐?"는 말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이미 국민도, 선수들도 달라졌다. 즐기는 것은 좋아하지만 동원되는 것은 싫어한다. 자발성과 창의, 젊은 감수성이 무시되거나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거침없이 자기 주장을 한다. 행사의 주역인 유도 은메달리스트가 미니 홈피에 "태극기 거꾸로 들면 MB 됩니다. 실수하지 마세요"라고 발언하는 세상이다.

스포츠의 계절이므로 골프에 빗대어 말하면 이명박 정부는 파 5인 긴 홀의 첫 티샷에서 OB를 냈다. 8ㆍ15를 기해 두 번째 티샷을 한 셈인데, 동반자들과 캐디는 "굿 샷"이라고 외쳤지만, 그 공은 지금 날아가고 있는 중이다. 어느 지점에 어떻게 떨어질지, 골프의 덕목대로 'far and sure'(멀리 정확하게)가 될지 알 수 없다.

긴 홀이므로 만회 샷의 기회는 아직도 있다. 홀 전체의 구조와 그린을 잘 읽어야 한다. 그런데, 세계 랭킹 5위인 최경주도 최근 기자회견에서 "나는 아직도 그린을 못 읽는다"는 놀라운 말을 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다른 부문에도 그러지 않을까

퍼레이드를 기획하는 발상으로는 그 홀에 제대로 적응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슨 일이든, 어떤 의제든 되도록이면 광장에서 처리하려 하지 않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광장의 일을 광장의 일로 해결하려 하는 것은 낡고 헌 생각이다. 그런 발상이 다른 부문에도 작동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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