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竊盜)'라는 말부터가 섬뜩하다. 둘 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짓'이지만 '도둑'보다 훨씬 '죄' 냄새가 강하다. 입맛 돋우는 반찬을 가리켜 '밥 도둑' 이라고 하듯, 도둑에는 다양한 뉘앙스가 스며 있기 때문일까. 아무튼 최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직장 절도' 실태보고서는 제목부터가 샐러리맨으로서는 반갑지가 않다. 더구나 전국 20개 기관 및 기업 종사자 394명의 설문조사를 토대로 만든 이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 75%는 무언가를 훔친 범죄자들이다. 그것도 자신이 다니는 직장을 상대로.
▦이 보고서는 '직장 절도'를 근로자가 업무수행 중 회사에 유ㆍ무형의 피해를 주는 각종 일탈행위로 규정했다. 여기에는 돈은 물론 '시간' 도 들어가 있다. 아프다고 핑계 대고 결근하고(19.8%), 초과근무수당은 속여서라도 많이 받는(3.2%)것 뿐만이 아니다. 근무시간에 직장을 이탈해 개인업무 보고(35.6%), 온라인게임이나 주식거래를 하고(60.2%), 점심시간 제멋대로 늘리고(50.9%), 담배 피우고 잡담하는(81%) 것도 절도다. 일은 적게 하고 월급은 꼬박 챙기는 '월급도둑' 이다. 법인카드를 개인 용도로 사용한다든지(3%), 직장 비품을 개인적으로 이용하는(16.2%) 죄도 이따금 짓는다.
▦이렇게 '직장 절도'가 많은 이유는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경우 특히 '시간' 에 너그러운 데다, 고용주들조차 아주 심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저지르는 쪽이나 막아야 할 쪽이나 '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집과 회사의 구분이 불분명하고, 맡은 바 임무에 불성실하며,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냉정하지 못하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그 결과 소비자들만 그런 비용까지 고스란히 부담하는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물론 직장에서 절대 해서 안 될 것들도 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회사전화를 개인적으로 쓰는 것(86.3%), 흡연과 잡담까지 '절도'라면 이거야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인가 로봇세상이지. 급하면 외부에서 개인 휴대폰으로 업무도 본다. 일은 느려 터져도 좋으니, 근무시간에 딴 짓만 않으면 된다는 건가. 근로계약은 '시간'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노동력과 생산성(효율성)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사소한 이탈까지 '절도'로 몰아세우는 것은 좀 과하다. 죄의식으로 주눅들게 하고, 직장에 '정' 떨어지게 하지 말자. 근로자라면 누구나 아는 윤리와 상식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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