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그물의 그물코처럼 따로이면서 함께, 함께이면서 따로 살도록 이루어졌습니다."
올해로 5년째 전국을 도보로 탁발순례하며 생명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도법 스님이 그간의 사유를 정리한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 (불광출판사)를 펴냈다. 그물코>
그는 2004년 3월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탁발순례의 첫걸음을 내디딘 뒤 지금까지 2만5,000여리를 걸었고, 7만5,000여명을 만났다고 한다. 그 순례길에서 틈날 때마다 생명평화에 대한 생각을 다듬어 글을 쓴 것이 모여 책이 되었다. 지금 경기 안양시를 순례중인 도법 스님이 책 출간을 맞아 18일 서울로 올라왔다.
"'파거불행 노인불수'(破車不行 老人不修ㆍ부서진 수레는 가지 못하고 늙으면 닦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지요. 공부하는 힘이 젊을 때와 나이 들었을 때 다르다는 말인데 요즘 그런 생각을 해요."
전날 밤 하안거를 마친 제자들과 불교 교리에 대해 토론을 하다 올라왔다는 스님의 첫마디였다. 올해로 예순. 적지않은 나이에 5년째 도보 순례중인 몸이라 그런 생각이 든 것일까.
"한국사회 현실에서 종교계가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 같아요." 스님은 종교와 종교, 종교와 과학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우리사회 공동의 이상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해왔다고 했다. "어느 종교든지 추구해야 할 가치가 생명평화라고 봅니다. 종교가 생명평화를 추구하면 종교뿐만 아니라 사회도 건강해질 겁니다."
생명평화는 그에게 모든 사람들이 함께 가꾸어야 할 보편적 이상이자 가치로 자리잡았다. 왜 생명평화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생명이 없는 평화는 있을 수 없고, 평화롭지 않은 생명은 불행하다"면서 "생명과 평화를 하나의 개념으로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책은 생명평화 운동의 세계관을 제시하는 관점에서 쓰여졌다. 기독교, 불교, 동양철학, 동학, 현대의 사유방식을 용해해 생명평화의 사상을 경전 형식으로 정리한 '생명평화경', 생명평화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담은 '생명평화 백대선언문'이 골자다.
책을 쓰는데 불교의 화엄적 사유방식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기독교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동학의 '사람이 곧 하늘이다' 현대과학의 '생명그물' 사상이 다 같은 말입니다. 이처럼 여러 종교와 과학이 만나는 곳이 생명평화입니다."
"세상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합니다. 종교도, 인생살이도 그렇습니다." 그는 세상사를 이렇게 정리했다고 했다. "우리가 '대동'은 보지 못하고 '소이'만 보는 게 문제입니다.
나무로 치면 뿌리는 보지 않고 잎사귀만 보는 것과 같지요. 우리 민족이 한 민족, 한 형제라는 대동의식이 탄탄했으면 해방직후 좌우 이념에 그렇게 시달리지 않았으리라고 봐요."
그는 "우리 사회가 같은 점은 보지 않고 다른 점만 보기 때문에 갈등이 많다"면서 "어차피 우리는 같이 살게 돼 있다"고 말했다.
순례길에서 생명평화라는 화두를 통해 누구하고도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그는 말했다. "성당이나 교회에 가도 생명평화에 대해 이야기 하면 누구나 공감합니다.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종교간 대화에 대해서는 "진리를 놓고, 참된 가치를 놓고 누구하고도 대화할 수 있어야 참된 종교라고 할 수 있다"면서 "대화를 거부, 기피하면 종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탁발순례와 생명평화운동을 하면서 종교의 벽을 많이 넘은 듯했다. "성당이나 교회에 갈 때면 예수의 생애를 생각해보는데,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힐 때의 마음가짐을 보면 대승보살도의 실천자, 법화경의 구도자 보살상과 일치해요."
순례길에서 하루 40~50리, 15km 안팎을 걸어왔다. 때로는 농민이나 노동운동을 하는 이들로부터 '뭣하고 있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밤새워 대화를 해보면 대부분 생명평화운동에 공감했다고 한다.
내달 5일부터는 서울 순례에 나선다. 12월13일까지 백일 동안이다. 4km 걷고 절명상하고, 4km 걷고 절명상하면서 순례하기로 했다고 한다. 도법 스님은 마지막으로 생명평화운동과 함께 걷는 문화, 절하는 문화를 대중화하고 싶다고 했다.
"걷기는 대단한 치유력이 있어요. 어릴 때 우리가 두 발로 걷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기억해보세요. 두 발로 걸으면 정신적으로 건강해져요."
남경욱 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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