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울었다. 17일 중국 베이징대 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탁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제2 단식을 이기고 현정아 코치 옆에서 복식경기를 지켜보던 당예서(27). 한국팀 승리가 결정되는 순간, 들고 있던 수건으로 입을 막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소원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뛰고 싶었던 올림픽 무대, 목에 걸고 싶었던 메달이었다. 가슴의 태극기는 그것을 위한 선택이었다. 알다시피 당예서는 중국인이다. 지린성 창춘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부터 라켓을 잡은 그녀는 전국청소년선수권 우승자. 그러나 쟁쟁한 경쟁자가 너무 많고, 실력만 있다고 아무나 대표선수가 될 수 없는 중국 탁구계 현실에서 그녀는 올림픽에 나갈 수 없었다.
귀화선수를 보는 이중적 잣대
그래서 8년 전 라켓 하나 들고 한국에 왔다. 대한항공팀 훈련파트너로 7년을 버텼고, 귀화시험도 치렀다. 마침내 지난해 10월 국가대표가 돼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에 섰다. 중국은 그녀의 선택을 '반국(叛國ㆍ배신)'으로 규정했다. "당예서, 이 매국노야"라는 욕까지 했다. 단식경기에서 그녀가 중국 선수를 이기기라도 한다면 경기장 전체에 그 말이 울려 퍼질지도 모른다.
그도 울었다. 2002년 10월 1일 부산아시안게임 유도 81kg급 결승전에서 한국의 안동진을 판정승으로 누르고 금메달을 딴 일본의 아키야마 요시히로는 설움과 회환의 눈물을 지었다. 한국 관중은 야유와 함께 "매국노"라고 했고, 어느 신문은 "조국을 메쳤다"고까지 표현했다. 단지 그가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 중국 관중을 욕할 자격도 없다. 불과 6년 전의 우리 모습이었으니까.
지금은 어떤가. 유도를 그만두고 격투기 선수가 된, 그래도 고국을 잊지 못해 양 어깨에 일장기와 태극기를 나란히 달고 온 그에게 젊은이들은 열광한다. 가수로, 광고 모델로, 이번 올림픽에서는 경기 해설자로 초대했다. 그의 상업적 가치를 이용하기에 바쁘다. 여전히 그의 국적은 일본인데.
재일동포 4세 추성훈은 한국의 대표선수가 되고 싶었다. 역시 유도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할아버지 나라 한국에서 태극기를 달고 한국인의 기상을 떨치라"라고 했다. 그래서 대학 졸업 직후인 1988년 4월 여동생과 함께 무작정 한국으로 왔다. 부산시청에서 한국 유도선수로의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꿈에도 그리던 조국이 준 것은 편견과 차별 뿐"이었다.
처음에는 실력이 모자라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누가 봐도 이긴 경기였지만 결과는 항상 판정패"였다. 2001년 아시아선수권, 일본 구도관배 우승에도 불구하고 국내 유명 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늘 바깥으로 밀려났다. 고민 끝에 그는 2001년 "일본에 살 때는 한국인이었는데, 한국에서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었다"는 말을 남기고 일본으로 귀화했다. 오직 마음 편히 유도만을 하기 위해서였다.
추성훈은 지금도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지난 2월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당예서도 중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한국대표가 된 것은 세계대회 참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일 뿐" 이라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인" 이라고.
'조국'이 기른 맹목적 국가주의
당예서에게도, 추성훈에게도 국적은 결국 '개인의 꿈' 을 위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메달을 안겨 주었다고 당예서에게는 "선수의 꿈을 국가가 막을 수 없다"고 두둔하고, 추성훈에게는 "조국을 메친 놈"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모순이다. 설령 일본에 귀화한 하야카와 나미(엄혜랑)가 여자양궁 개인전에서 한국 선수들을 꺾었더라도 "조국을 쏘았다"며 욕할 수 없다. 다른 나라 팀을 이끌고 올림픽에 나선 한국인 감독과 코치들, 국적을 바꾼 수많은 외국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올림픽만큼 '국가'가 중시되는 곳도 없다. '개인의 경쟁'은 말 뿐이다. 각국이 목숨 걸고 메달경쟁을 벌인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혈통(민족)주의도 올림픽에서만큼은 팽개쳐 버린다. 환희와 감동 뒤에 숨은 그 맹목적 국가주의와 이중성이 무섭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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