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과 건국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실제로 지난 15일 광복 제63주년 기념식이 각자의 입장에 따라 둘로 쪼개져서 거행되었다. 논란의 본격적인 발단은 지난 7월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변경하도록 하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제출하면서부터이다. 뉴라이트 등 보수단체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독립투쟁 부정하는 '건국절' 주창
논란의 중심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다. 현행 헌법은 전문(前文)에서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고, 제헌헌법에도 '재건국'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승만 대통령도 제헌국회 연설에서 건국 30주년이라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결국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은 임시정부가 건립된 1919년 4월 13일이며, 만약 1948년 8월 15일을 기점으로 잡는 경우 일제 강점기의 가열찬 독립투쟁의 역사를 전면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건국절 주창자들도 이 문제는 곤혹스러운 모양이다. 한나라당 현경병 의원은 "헌법의 규정은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이지, 임시정부를 그대로 이어간다는 뜻은 아니며 임시정부가 근대적 정부형태를 가진 국가통치기구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임시정부(Government-in-Exile)는 국제법 상의 용어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던 체코가 파리에 망명정부를 수립하자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이 체코임시정부를 승인하면서, 이에 대한 국제법적 성격이 규정되기 시작하였다. 2차대전 당시에는 8개국의 임시정부가 런던에 주재하고 있었다.
국제법에 따르면 임시정부란 '타국 지배 하에 있는 국가의 개인들이 조국의 국권 회복이나 건국을 목적으로 제3국에 건립한 정치적 결사'로서, 해당 임시정부가 주재하는 국가의 승인을 받고, 점령국이나 괴뢰 정부에 대신하여 국가행위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제법은 이러한 임시정부에 대해서 일정 기간 자국 영토에 대한 실효적 지배원칙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3ㆍ1운동의 높은 이상을 품고 수립되어 이승만 대통령부터 김구 주석에 이르기까지 단 한 순간도 조국 독립의 열망을 버리지 않고 미주, 유럽 등에서의 독립 외교활동과 윤봉길 이봉창 의거와 같은 빛나는 의열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중국의 장제스(蔣介石) 총통 정부와 프랑스, 폴란드, 소련 정부 등이 우리 임시정부를 승인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미국의 지원 하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광복군 특수부대가 미군 정보부대와 함께 작전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일본조차 윤봉길 의거를 테러집단의 소행이 아닌 민간 복장의 특공대에 의한 전시 공격으로 규정함으로써 임시정부를 간접 승인하였다.
또한 임시정부는 30년 동안 근대적 형태의 거의 모든 정부구조를 실험해보았으며 다양한 이념과 정파를 포용하였다. 이러한 헌정 경험이 국권회복 후, 유례 없이 빠른 민주주의의 달성에 바탕이 되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도대체 무엇이 추상적이며 무엇이 전근대적이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고귀한 선열들의 뜻 폄훼 말아야
광복은 국권 회복과 정부 수립을 포괄하여 '빛을 되찾는다'는 높은 철학적 개념이다. 겨레의 큰 스승이신 백범께서 말씀하신 '통일된 문화국가'의 달성도 광복에 포함될 것이다. 또한 광복절은 광복을 기념한다는 의미와 함께 진정한 광복을 향한 다짐도 되새기는 날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더 이상 평생을 조국 독립에 헌신했던 선열들의 고귀한 뜻이 '건국'이라는 미명 하에 특정 집단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폄훼되는 제2의 국치(國恥)를 겪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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