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 83일만에 극적으로 국회 원구성 협상이 타결됐지만 여야 모두 득보다 실이 많았다.
한나라당은 여당으로서의 협상력ㆍ정치력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다. 쇠고기 사태로 운신의 폭이 좁았다고는 하지만 172석이란 의석수가 무색할 만큼 협상을 주도하지 못했다. 가축법 개정과 쇠고기 국정조사 합의, 야당 몫 법사위원장 자리 배정 등을 야당에 차례로 양보하고 겨우 국회 문을 열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당청간 불협화음까지 노출됐다. 이것저것 다 내주는 당에 불만을 가진 청와대는 지난달 31일 타결직전까지 갔던 협상을 발로 찼다. 이로 인해 협상대표였던 홍준표 원내대표가 지도력에 회복하기 어려운 내상을 입었다. 실제 19일 당내 상임위원장 경선에서 홍 원내대표가 내정한 후보자가 탈락하는 등 지도력 약화의 조짐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그나마 성과는 민주당의 줄기찬 요구에도 불구하고 개정 가축법을 이미 체결된 한미쇠고기 협상에는 소급적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지켜냈다는 것인데, 당초 당정이 불가침의 영역으로 삼았던 지점인 만큼 반향은 미미하다. 그러나 "여당의 단독 원구성 강행 시 초래될 정국파탄을 막은 점은 양보한 내용보다 훨씬 의미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민주당도 "석 달 간 국회 운영을 볼모로 삼은 대가가 고작 이것이냐"는 안팎의 싸늘한 시선에 직면해 있다. 당장 당내 강경파들로부터 "촛불사태를 불러온 한미 쇠고기 협상을 사실상 추인해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여전히 쇠고기 재협상을 외치는 재야 시민사회 진영으로부터 '촛불민심'을 배반했다는 비판이 예상된다.
물론 광우병 유발 가능성이 있는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정부가 임의로 수입하지 못하게 반드시 국회의 통제를 받도록 했고, 광우병 추가 발생시 즉시 수입중단조치를 취하도록 한 점은 나름의 의미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 일본 대만 등 주변국가의 협상 결과를 반영해 정부가 미국과 재협상을 하도록 국회 차원에서 당위성과 근거를 확보하고, 내장 부위 전체로 특별위험물질(SRM)을 확대 규정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진일보한 조치다.
하지만 세부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작은 실리를 위해 국회의 장기파행을 초래한 소탐대실의 작은 모습으로 국민에 비쳐진 부정적 측면을 안게 됐다.
아울러 민주당 지도부도 시종 강경파에 휘둘리는 리더십 부재의 문제점을 노출했다. 국회의장이 보는 앞에서 원내대표들이 모여 서명까지 한 협상결과가 번복된 것은 지도부의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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