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포스트 무샤라프' 시대를 맞아 파키스탄과 새로운 관계 구축에 부심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핵무기 50~100기를 보유한 1억6,500만명의 인구대국일 뿐 아니라 미국이 수행중인 '테러와의 전쟁'에서 없어서는 안될 전략적 동맹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9일 부시 행정부 고위 관료의 발언을 인용, "미국은 지난 9년간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대통령과의 관계에만 매달려 왔다"며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지대에서 세력을 넓히는 알카에다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파키스탄 집권연정을 설득해 동맹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미국의 새 파트너 찾기가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군 통수권을 물려받은 아시파크 카야니 참모총장 등 파키스탄 군부는 아프간 국경에서 대테러 전쟁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 미국의 신뢰가 극히 낮다. 파키스탄 정보부 역시 극단적 무슬림세력이 장악하고 있어 은밀히 파키스탄 내 반미 무슬림을 돕고 있다는 의심마저 받고 있다.
미국이 특별히 공을 들이는 인물은 유수프 길라니 총리. 미국은 지난달 그를 초청해 2억3,000만달러의 대테러원조자금과 1억1,500만달러의 식량원조 제공을 약속했다. 하지만 길라니 총리는 5월 미국과 아프간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프간반군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등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반대해왔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전폭적인 신뢰관계가 형성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결국 아시프 자르다리 파키스탄인민당(PPP) 의장과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무슬림리그(PML-N) 총재의 연정이 장악한 의회가 미국이 유일하게 희망을 걸만한 세력이다. 하지만 이들 정당은 내부 정파 갈등에 정신이 없어 최근 격화하는 아프간반군과의 무력충돌에 관심을 쏟을 여력이 없다.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18일 "파키스탄 정부에 국경지대의 극단주의자 및 알카에다와의 전투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으며 파키스탄의 새 지도자와는 일관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내부 정쟁에 정신이 팔린 파키스탄 지도부에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무샤라프 대통령의 사임으로 미국의 대테러 전쟁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와 달리 그의 사임이 도리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NYT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오랜 동맹자인 무샤라프의 사임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고 백악관 대변인이 대신 성명을 발표토록 한 것에 대해 "부시 행정부가 수개월 전부터 '무샤라프 이후의 파키스탄'에 대한 전략을 수립해왔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AFP통신은 "무샤라프가 미국과 탈레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는 등 미국의 진실한 파트너라고 보기에 어려운 인물이었으며 신임 대통령이 취임하면 도리어 대 테러전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미국의 파키스탄 국경지대 폭격으로 파키스탄의 반미감정이 증가한 것은 미국이 파키스탄 새 정부의 협조를 얻는데 장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프타브 셰르파오 파키스탄 전 내무장관은 "파키스탄 연정이 내부적으로는 '무력사용반대'를 외치고 외국정부에게는 '우리는 싸울 것'이라는 립 서비스만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NYT는 보도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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