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이 반환점을 돌아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이번 올림픽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온 국민의 열광적 관심을 모았다. 귀갓길의 아파트는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반기는 함성으로 쩌렁쩌렁 울렸고, 만나는 사람마다 올림픽 메달 소식을 화제로 삼았다.
개막 초부터 금메달 소식이 줄을 이었고 최민호 박태환 장미란 등 금메달 스타들의 성공담, 아깝게 메달을 놓친 선수들의 기막힌 사연이 무더위와 생활고에 지친 사람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으리라. 혹은 이명박정부 출범 초부터 지루하게 계속되던 국정혼란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가슴 뿌듯한 한국 선수들 선전
'중궈 짜요'(中國加油)라는 중국관중의 일방적 응원공세를 꿋꿋이 견디며 선전하는 우리 선수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가슴 뿌듯하고 행복한 일이었다. 박태환의 금메달로 대박을 터뜨린 기업들 못지않게 정부 역시 여간 즐겁지 않은 표정이다. 그 바람에 대통령 지지율까지 상승한다니 어딘지 어색하다.
베이징올림픽은 준비단계서부터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지만 개막 후에도 말 많고 탈이 많았다. 개막식에 등장한 소수민족 어린이들이 모두 한족(漢族)이었다는 '짝퉁 개막식' 논란, 경기 방해나 다름없는 텃세응원, 편파판정 시비, 티베트사태, 언론탄압 시비 등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국민과 정부가 열심히 준비하고 애쓴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아직 이르기는 하지만, 베이징올림픽도 올림픽사에 또 하나의 성공적 페이지를 남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베이징올림픽은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모토로 내걸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키워드로 '중화주의'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했다는 개막식행사는 중국의 4대 발명품이라는 화약, 나침반, 종이, 인쇄술을 형상화함으로써 원래 세계 문명의 중심이 중국이었다는 것을 세계 만방에 더할 나위 없이 뚜렷이 과시했다. 그 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중국은 처음부터 줄곧 금메달 1위를 내달리고 있다.
다른 한편, 베이징올림픽은 '냐오차오 세대'의 작품이라는 말이 들린다. 그들이 올림픽 이후 중국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베이징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의 이름은 '냐오차오'(鳥巢), 즉, 새의 둥지다. 이 둥지로부터 애국심으로 무장한, 올림픽 자원봉사를 위해 영어를 배우고 외국인과의 대화에도 주저함이 없는 20대 젊은이들이 몰려나온다. 중국의 신세대가 '냐오차오'에서 알을 깨고 세계의 중심으로 탄생하고 있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라는 슬로건과 중화주의, '냐오차오' 세대, 오늘날 중국의 의지와 표상을 집약적으로 함축하는 이 일련의 표상들은 자연스레 경기장을 가득 메운 중국 관중이 연호하는 '짜요' 함성으로 연결된다. 냐오차오세대 앞에서 인권문제나 소수민족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중국 지도자들은 아마도 올림픽과 '냐오차오 세대'의 애국주의에서 민족문제나 인권문제, 고도성장으로 인한 빈부격차와 환경오염 등 개혁 개방의 부작용을 해결할 열쇠를 찾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중국, '하나의 꿈'만 꾸지 않을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평화와 페어플레이라는 올림픽정신은 날이 갈수록 남루해지고 황폐해지는 느낌이다. 스포츠국수주의의 광기를 누가 억제할 수 있을까. 올림픽과 스포츠가 성장산업이 된 지 오래고, 무수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현실은 어쩔 수 없지만, 스포츠를 통한 우애와 화합이라는 올림픽정신이 집체적 애국주의와 국수적 군중심리에 함몰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중국 지성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그만큼 오랫동안 온 인류의 존경을 받았다. 중국사회가 이성적 평정심을 잃지 않으리라고 항상 기대해 보지만, 썩 마음이 편치 않다. 단연 돋보이는 중국의 메달행진을 시기하거나 중국이 이룩한 경제적 성취와 부를 부러워하기 때문은 아니다. 세계의 정치경제 자본과 자원을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중국의 위력도 두렵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중국이 정작 '하나의 세계'가 되어 '하나의 꿈'만 꾸게 되는 것이 아닐까.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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