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는 자신의 손길로 남에게 도움을 펼치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휴일인 오늘(17일)만 해도 자원봉사자는 전시 안내와 각종 프로그램의 진행을 성의껏 돕고 있다. 그리고 박물관회원은 1년 내내 어린이박물관학교를 운영해 나가고 있다. 꼬맹이들의 응석도 들어주고 때로는 머리도 쓰다듬어 주면서 힘든 길을 가고 있다. 그 외에도 박물관의 운영이나 홍보에도 직원들을 대신하여 적극적으로 나서주고 있다. 아마도 이들의 도움이 없다면 내실이 있는 박물관의 운영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박물관에서는 이른바 '나눔의 철학'을 몸소 실천하는 분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앳된 젊은이들이 장애인 대상의 전시회를 갖거나 문화행사,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한국에 정착하여 살아가야 할 다문화 가정을 위한 어학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고, 또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주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래서 강원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5,000여 명의 외국인 여성과 그보다 많은 자녀들의 위안이 되어 주고 있다. 한편 노년층을 위한 노래자랑, 국악공연, 짝짓기모임도 자주 개최하여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박물관의 문화행사로 정착시켜 놓았다.
이런 분들을 지켜보다가 궁금한 마음에 질문을 던져보기도 한다. "금전적인 대가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그저 좋아서 할 뿐이다"라고 대답을 한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그저 의미가 있을 듯한 미소만으로 대답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들 중에 일부는 여가 시간을 활용하거나 사회적인 평판을 얻기 위해서 박물관을 활용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이 굳이 어려운 길을 자청하고 가는 데에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관장실의 소파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이 무엇일까'를 탐구하다가 문득 영국에서 만난 양주혁 전도사를 떠올렸다.
그는 해외선교를 위한 사전준비차 영어 연수를 왔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누가복음을 공부하던 중에 '가진 자들이 조금씩 나누어주면 이 세상은 모두에게 공평할 수 있다'는 '내면의 울림'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기도에 대한 응답일 것이다. 그 이후로 해외선교에 마음을 두고, 기꺼이 험난한 길에 나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내면의 울림'때문에 많은 이들이 박물관으로 찾아와 나눔의 손길을 펼치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기독교인이라면, 교회의 차디찬 마루바닥에서 드렸던 절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보여 주었던 사랑의 실천을 자신의 길로 삼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때문에 이천년 전의 중동지역이라는 시간과 공간이 현재의 박물관 속에서 재현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불교인이라면, 사해(四海)가 그물처럼 얽혀 있다는 생각에서 모두가 하나이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이에게 느끼는 끊임없는 자비심(慈悲心)으로 자신의 한 몸을 던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박물관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와 같은 '내면의 울림'이 온 세상의 대기 속으로 물결쳐 흐르고 있는 것 같다. 나눔으로써 개개인의 경제력, 신체적 능력, 학력, 나이, 성, 언어 등의 차이를 넘어서 모든 이에게 특별히 차고 넘침이 없도록 조절해주는 것 같다. 그리고 마치 양주혁 전도사의 '공평한 세상'이야기를 입증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유병하 국립춘천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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