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폰 브란트 지음ㆍ김종수 옮김/살림 발행·448쪽·2만3,000원
1895년 10월 8일 건청궁에서 일본 자객들에 의해 민비가 살해된 사건을 당대의 다른 열강의 외교관들은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조선과 독일의 통상조약을 체결한 주역으로 노련한 독일 외교관이었던 막스 폰 브란트(1835~1920)에게 민비 시해는 일본에 대한 조선 민중의 뿌리깊은 증오심을 촉발시킨 사건이었다. 미우라 일본 공사 등 시해 주범들에게 "전체 무리는 광화문을 통해 궁궐을 침입해 즉시 내방에 들어갔지만 이같은 사실에도 피고들 가운데 누군가가 당초 계획한 범죄 모의 행위를 정말 실행해 옮겼다는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한 일본 법정의 판결을 그는 한 편의 '소극(笑劇)'이라고 표현했다.
<격동의 동아시아를 걷다> 는 18년 동안 청나라 공사를 역임한 브란트가 1873년부터 1896년까지 20년 넘게 유럽의 여러 잡지에 기고했던 10여 편의 동아시아 관련 칼럼을 묶은 책이다. 영국과 경쟁하던 신흥제국 독일에게 동아시아 특히 조선은 자국의 이해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지역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당대 동아시아의 역학관계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있다. 격동의>
책은 일본의 건국과 역사, 청과 유럽의 관계, 청일전쟁의 경과와 결말을 둘러싼 열강들의 정치적 계산 등 당대의 동아시아 문제를 전방위적으로 훑고 있다. 조선 관련 부분은 2개 장에 불과한 것이 아쉽지만 임진왜란에서 을미사변까지 조선과 일본의 뿌리깊은 구원(舊怨)을 추적하는 과정은 꼼꼼하다.
저자 역시 제국주의자라는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일본의 팽창주의에 대해서는 극도로 비판적이다.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가 요동반도 반환으로 귀결되자 "끝을 모르는 헛된 자만심의 결과가 어떠한 것인지를 여실히 입증해 준다"고 조소하고, 일본 문명에 대해서는 "중국 문명의 지류에 불과하고, 정신적 분야에서 고유한 꽃을 피우지 못했다"고 폄하한다. 또 1876년 일본의 강제적인 류큐 병합 건을 관찰한 뒤 "이웃나라와 평화롭게 지내길 원하며 이웃나라의 백성들이 싫어하고 정부가 요청하지 않을 경우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본의 설명은 거짓"이라고 갈파한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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