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8월의 독립운동가로 광복군 참모총장을 지낸 문화 류(柳)씨 유동열(柳東說) 선생을 선정하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들었던 리승만 대통령이 학교에 들어가 보니 어느 틈에 이승만으로 바뀌었던데, 조선 말기 서울에서 서당을 다니고 하버드와 프린스턴을 졸업한 뒤 초대 대통령을 지낸 분이 자기 성을 리(Rhee)라고 썼으면 분명히 그게 맞을 것이다.
자유당 시절 대통령선거 벽보에도 리승만으로 나왔다. '전환시대의 논리'나 '새는 좌우로 난다'를 써서 해방 이후 한국 최고의 지성인으로 알려진 분도 역시 자기 이름을 리영희라고 쓰고 수 백 만 명이 지금도 여권에 Lee씨라고 적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박정희 대통령이 한글 사용을 장려하고 전두환 대통령이 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국어원을 추진한 후부터 불과 몇 사람의 국어학자들이 자주 한글을 뜯어고치고 있는데 라(羅) 류(柳) 리(李) 등의 성을 나씨, 유씨, 이씨로 바꿔버렸다. 부모가 어떻게 적어내도 공무원이 출생신고서의 글자를 바꿔버리기 때문에 강제로 아버지와 아들의 성씨가 달라졌다. 많은 분들이 학창시절에 외워야 했던 소위 두음법칙이라는 것을 언제나 써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한글을 기계적으로 너무 단순화해서 요즘 한국인은 외국어 발음을 배우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대법원도 여기에 가세해서 이름에 쓰는 한자는 1,800개만 쓰라고 강요한 적이 있다. 한편 독도(獨島)는 Dok-do로 적다가 Tok-do로도 적고 외국인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일본의 타케시마에 길을 내주고, 올림픽이 열리는 북경은 어느새 베이징으로 바꿔서 중국인도 어디를 말하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일본어와 한자를 이토록 힘껏 뿌리째 뽑아놓고 이제 와서 중국으로 유학 가는 학생이 제일 많아졌으니 우리는 지난 40년 무슨 바보놀음을 한 것일까.
요즘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효과(효꽈, 效果)라고 발음하지 않고 '효-과'라고 어색하게 말하는 아나운서를 쉽게 볼 수 있다. 중국음식점에서 파는 짜장면도 아나운서만 자장면이라고 발음한다. 정부가 어문규정이라는 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를 지키려고 '진심으로' 노력하는 프랑스에서는 몇 사람이 모여서 그런 개탄스러운 일을 몇 년마다 벌이는 것이 아니라, 존경 받을만한 사람이 많이 모여서 상품이나 간판에 무분별한 외래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지금도 모든 교과서를 바꾸고 있는데 내년도 교과서는 아이들에게 인사말과 기댓값은 맞지만 인삿말과 기대값은 틀렸다고 가르칠 것이다. 재수생들은 수능시험을 보려면 맞춤법부터 새로 배워야 할 판이다. 외국에서 부모는 Love라고 아는데 아이에게는 Luve나 Lobe라고 가르치던가. 아이들 눈에 부모 세대는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모르는데 어떻게 연장자가 존중되고 지식이 다음 세대에 넘어갈 수 있을까.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기초과학학회연합회 등 한국의 거의 모든 학술단체가 반대했음에도 국어학자 몇 사람이 툭하면 교과서까지 바꾸는 이 나라가 놀랍기만 하다. 문화 류(柳)씨는 법정투쟁에서 마침내 승리해서 예전에 류씨로 살았던 사람은 원래 성씨를 회복할 수 있다. 국립국어원은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한민국학술원 산하로 보내고 어문규정은 고쳐야 한다. 나는 지금도 짜장면이 좋다.
한상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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