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광복 63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특별사면과 감형, 복권 등을 단행했다. 사면 대상 34만 1,864명 중에는 경제인 74명, 정치인 12명, 공직자 10명, 지방자치단체장 12명 등이 포함됐는데, 무리한 사면이 적지 않아 여론이 들끓고 있다.
특별 사면을 받은 기업인 중에는 온 나라를 발칵 뒤집으며 배임, 횡령, 사기, 재산도피 등으로 재판을 받던 기업인들이 대거 포함됐다. 폭력사범까지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사면됐다. 1천500억 원의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은 사람, 수십억의 세금을 체납하고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사람, 이미 두 번 사면을 받은 전력에 이어 세 번째 사면을 받는 사람도 있다.
경제 살리려고 경제사범 사면?
이 대통령은 "기업인 사면에 대해서 일부 비판이 있다는 걸 알고 고심했지만, 관련 기업인들이 해외활동에서 불편을 겪고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어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사면대상은 모두 전 정권에서 발생한 것이며 나의 임기 중에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사면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의 말은 설득력이 없고 법치에 대한 인식에 의문을 갖게 한다. '경제 살리기'를 위해 경제사범들을 서둘러 사면한다니 말이 안 된다. 사면대상 중에는 이미 기업활동을 접은 사람들이 다수 포함되었고, 국민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사면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 들어갔다. 자신의 측근도 끼워 넣었고, 정치적 계산도 여기저기 드러났다. "내 임기 중에 일어나는 범죄에는 사면이 없다"는 선언도 믿기 어렵다. "앞으로는 절대 용서 안 해" 라고 아이들을 야단칠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야당 시절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을 예외 없이 개탄했고, 대통령이 된 후에는 예외 없이 사면권을 남용했다. 무리하게 측근을 끼워 넣고, 정치적 계산과 인심 쓰기와 빚 갚기 등으로 사면을 이용했다. 김영삼 정부는 9회에 걸쳐 702만2,242명, 김대중 정부는 8회에 538만3,127명, 노무현 정부는 8회에 425만2,441명을 사면했는데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사면권 남용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이번에 특히 사면권 남용을 문제 삼는 것은 작년에 사면법을 개정, 사면심사위원회의 사전심사를 거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첫 번째 특별사면을 했지만 주로 민생사범 대상이었기 때문에 심사위의 역할이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뜻밖의 결과가 나오자 "심사위가 제 역할을 했느냐. 법을 개정해서 뭐가 달라졌느냐"는 비난이 빗발쳤다.
심사위는 법무부장관을 포함한 법무부와 검찰 간부 5명, 민간위원 4명으로 구성돼 있고, 회의록 공개는 10년 후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발표 하루 전인 11일 4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는 심사위에서 어떤 토론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국민의 기대를 모았던 심사위가 거수기로 전락한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을 막기는커녕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측 위원들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구조가 문제라고 하겠지만, 그들도 모두 법을 다루는 사람들인데, 이런 결과를 막지 못했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거수기로 전락한 사면심사위
이 대통령은 '국민 대통합'과 '경제 살리기'를 내걸고 특별 사면을 단행했지만, 대통합은커녕 국론 분열이 심각하다. 같은 죄를 짓고 복역 중인 사람들이 특별사면자 명단을 본다면 "이게 나라냐. 개같은 세상이구나" 라고 분통이 터질 것이다. "삼성사건은 전 정부 시절 발생했으니 사면 대상일까. 이 정부 시절 재판을 하고 있으니 사면대상이 아닐까. 사면되는 시기는 몇 달 후일까" 라는 퀴즈도 나돌고 있다.
대통령이 '통 큰 정치'를 할 수는 있지만, '통 큰 사면'을 해서는 안 된다. 양식 있는 법치국가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것이 우리나라 법치의 현주소라면 대통령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장명수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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