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3시, 서울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팔순을 넘긴 노신사 6명이 모였다. 지팡이에 의존할 정도로 기력은 쇠했지만, 눈빛만은 모두 형형했다.
노신사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은 뒤 나란히 동성고 정문 옆으로 향했다. 3m는 넘어 보이는 검은색 비석이 나타났다. 비석 앞면에는 '대한조국주권수호일념비(大韓祖國主權守護一念碑)'라는 한자가 큼지막하게 쓰여있고, 그 뒷면에는 2,700여명의 이름이 한글로 적혀 있다.
이날 모인 노신사들은 곽병을(87ㆍ일본 주오대 졸업 직후 징집) 회장 등 '1ㆍ20 동지회' 회원들이다. 1ㆍ20 동지회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 1월20일 한국과 일본, 만주 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한국인 청년 4,385명 가운데 생존자 1,300여명이 63년 결성한 단체다.
일본은 당시 중국, 동남아 등에서 연합군에 밀려 패색이 짙어지자, 병력 보충을 위해 식민지 한반도 청년의 강제 징집에 나섰다. 김종민(86ㆍ주오대 재학 중 징집)씨는 "일본 제국에 협력하지 않으려고 숨었더니, 일본 순사가 부모님을 볼모로 붙잡아갔다"며 분개했다.
박중근(86ㆍ연희전문 재학 중 징집)씨도 "후방에 남아 있는 한국인 대학생들이 일본 정부에 반기를 드는 것을 막기 위해 총알받이로 끌고 갔다"고 회고했다.
김씨와 박씨처럼 강제로 끌려간 한국 청년 4,000여명은 45년 8월15일까지 1년7개월간 일본군 신분으로 전장에 투입됐다. 4,000여명 중에는 김수환(86ㆍ일본 소피아대) 추기경과 강영훈(86ㆍ만주 건국대) 전 국무총리, 고 윤천주(일본 동경제대) 전 문교부장관, 고 이일규(일본 간사이대) 전 대법원장 등 한국 사회의 원로도 다수 포함됐다.
김봉호(85ㆍ일본 게이오대)씨는 "해방 이후 한국을 이끈 주역들이 1ㆍ20 동지회에서 다수 배출됐다"며 "이는 일제가 한민족 기둥이 될 청년 지식인을 싹쓸이해 전쟁터로 내보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젊은이도 견디기 힘든 한여름 뙤약볕을 무릅쓰고 팔순의 어르신들이 이날 자리를 함께 한 것은 21일 예정된 '일념비' 건립 10주년 행사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1ㆍ20 동지회 회원들은 98년 8월21일 '불행한 역사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본군에 징집된 뒤 군사훈련을 받았던 동성고 운동장에 일념비를 세웠으나, 이후 별다른 기념 행사는 갖지 않았다.
곽 회장은 "기록돼야 할 역사지만 자랑스러운 과거도 아니어서 소극적이었으나, 올해는 일념비 건립 10주년 기념 행사를 공개적으로 치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존 회원이 236명밖에 남지 않은데다가, 일본이 여전히 독도 침탈 야욕을 숨기지 않는 것도 우리들을 나서게 했다"고 말했다.
1ㆍ20 동지회는 21일 강제 징집을 여전히 '학도병의 자발적 입대'라고 우기는 일본을 꾸짖는 한편, 후세들에게 일본에 대한 경각심은 잊지 않고 훌륭한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당부가 담긴 기념사를 준비하고 있다. 곽 회장은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후세들이 잘못된 역사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데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