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06년 4월 서른 나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제 결혼식을 한달 정도 남겨 둔 주말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두 모인 우리 가족은 거실에 둘러 앉아 TV를 보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죠. 주말이면 할머니와 엄마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챙겨보는 주말연속극에는 마침 결혼식 장면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걸 본 여동생이 "언니도 아빠랑 손 잡고 들어가는 거 연습 해 봐"라고 말하자 할머니가 웃으시며 "지 아부지 일찍 죽고 쟤가 지 동생들 손 잡아줘서 다 시집 보냈는데 뭘 또 해봐? 해보나 마나 잘하지"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아빠는 3남5녀 8남매의 맏이로 고모 다섯이 결혼할 때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대신 손을 잡고 입장하시며 할아버지 자릴 대신 했거든요. 여동생은 "그래두, 우리 해보자. 재미있겠다"하더니 혼자 신이 나서 가족들한테 역할을 지정해 주더군요. "할머니랑 엄마, 새언니는 소파에 앉고 오빠는 형부 역할을 해. 내가 사회를 볼게."
그런데 동생이 소파에 앉아 계신 아빠 손을 잡아끌자 아빠는 "에이, 뭘 연습을 해. 다리가 이래 가지구…."라며 손을 내저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얘, 미나야. 그냥 사위랑 둘이 입장하지 그래. 저 번에 예식장 가보니까 요즘엔 그냥 부부가 둘이 입장하더라. 내가 다리 질질 끌고 들어가면 사람들이 쳐다보고 하는 게 싫으니까 그냥 사위랑 둘이 입장해"라고 하시더군요.
아빠 말씀을 들으니 목이 메였습니다. 아빠는 2000년 가을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다리가 불편해지면서 자신감을 잃으셨는지 남들 앞에 서는 걸 부끄러워하셨거든요. 할머니와 엄마도 눈시울이 붉어 지셨습니다. 동생은 볼멘 소리로 "에이, 아빠. 그런 게 어딨어. 얼른 연습하자. 응?"하고 아빠를 더욱 재촉했습니다.
아빠는 "내가 창피해서 싫어"하시며 고집을 피우시다 결국 동생과 제 성화에 못 이겨 일어서시며 "거참, 말들 되게 안 듣네"하시고는 제 손을 잡으셨습니다. 동생은 "신부입장!"하고 군인처럼 씩씩하게 외치더니 "빰빠밤~빰빰빰~ 빰빠라밤"팡파레를 울려 저희 가족이 모두 한바탕 웃었습니다. 가족들은 조카가 던진 사탕이 여기저기 떨어지는 것을 열심히 주워가며 두세 번 연습을 했습니다.
드디어 결혼식날이 됐습니다. 저는 아빠와 식장 입구에 나란히 섰습니다. 식장 안에서 결혼식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인사말이 들려오자 우리 뒤에 선 동생은 "아빠, 파이팅!"이라며 응원을 했습니다. 제가 아빠 손을 먼저 잡았습니다. 그런데 무척 긴장하신 듯 아빠의 장갑 낀 손은 제가 느낄 정도로 이미 땀으로 축축하고 손은 덜덜 떨고 계셨습니다.
제가 "아빠 떨려?"하고 묻자 아빠는 "휴~, 니 고모들 때는 안 그랬는데 왜 이렇게 떨리냐?"하시더군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빠한테서 술 냄새가 엄청 심하게 나더라구요. 아빠 얼굴을 살짝 뵈니 얼굴은 벌겋고 물들고 눈까지 충혈되셨더군요. 이마에는 땀까지 송글송글 맺히셨습니다. 놀라서 "아빠, 술 드셨어요?"하고 물으니 아빠는 "응. 내가 하도 떨려서 식당 가서 맥주잔으로 소주를 다 마셨다. 휴~, 저기가 왜 이렇게 머냐. 내가 취했나?"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아빠는 큰 딸 손을 잡아 사위한테 건네 주시는 게 무척 힘이 드셨나 봅니다.
전 입장도 하기 전에 눈물이 나와 참느라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신부입장!"이라는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자 저는 덜덜 떨리는 아빠 손을 꽉 잡고 한발 한발 걸어 들어갔습니다. "딴~딴따단~딴~딴따단~" 사위한테 제 손을 쥐어 주며 아빠가 하신 말씀은 "고맙네"였습니다. (저 나중에 신혼여행 다녀와 아빠한테 따졌습니다. "아빤, 사위한테 뭐가 고마워? 사위가 땡 잡은거지. 왜 고맙다 그랬어?"하니까 아빤 그저 "내가 그랬나? 그날 술을 마셔서 그런가 기억이 잘 안 난다. 허허허…"하고 웃으시더라구요.)
어쨌든 결혼식 순서에 따라 부모님께 인사드릴 때 아빠는 구부리지도 못하고 한 쪽 다리를 쭉 뻗고 앉으셔서 장갑 낀 손으로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그런 아빠를 보자 참았던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군요. 신랑은 제 눈물 닦아 주기에 바빴고, 도우미는 "아이고, 신부님! 화장 다 지워져요. 기쁜 날 왜 우세요"하며 제 눈에 번진 마스카라를 수정하고 연신 분을 발라대더군요. 아무튼 그날 아빠를 보며 어찌나 가슴이 저미고 눈물이 나던지요. 폐백까지 마치고 친지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기 위해 식당을 돌 때는 다들 "아유, 결혼식날 신부가 웃으면 딸 낳는다는데. 그 반대니까 아들 낳겠네"하시더군요. 하지만 그 말이 거짓말인지 저 지금 딸만 둘 낳았습니다.
저희 아빠요. 얼마나 손녀들이 보고 싶으셨는지 사고 후 운전에서 손 떼셨는데 얼마 전에 다시 운전 연습을 시작해 열심히 두려움을 극복 중이십니다. 조만간 할머니랑 엄마 모시고 손수 운전해서 제가 사는 경주에 오시겠다고 매일 전화를 하세요. 제가 아닌 저희 딸한테요. "윤서야! 할아버지가 윤솔이 백일날 빠방 타고 증조할머니랑 할머니랑 주연이오빠랑 놀러 갈게. 할아버지가 윤서 사탕두 많이 사가지고 갈게."그럼 딸은 알아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할비, 할비"하고 할아버지만 열심히 부릅니다. 저도 아빠가 운전하시고 저희 집에 오실 그날 바로 우리 둘째 딸아이 백일날인 15일이 기다려지네요.
아빠, 아빠 다리 불편한 것 저흰 하나도 안 부끄러워요. 아빠도 부끄러워 마세요. 그저 아빠가 앞으로 다른 사고없이 더 건강하게 오래오래 저희 곁에 있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오실 때 운전 조심, 또 조심하세요. 사랑해요. 아빠, 엄마, 할머니.
경북 경주시 건천읍 - 백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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