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뼈 안에서 울리는 내재율'(신달자), '내 삶의 궁기를 베껴 적은 것'(문인수), '말하고 싶어 쉴새없이 들썩였던 것'(최영철)….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시인들의 답변이다. 계간 <시인세계> 2008년 가을호는 시인 44명이 쓴 원고지 2매 가량의 짧은 시론(詩論)을 소개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시인세계>
시는 우선 실존을 표현하는 장르다. 천양희씨는 "나에게 시는 절망이 부양한 내 목숨에 대한 반성문"이라고 했고, 신대철씨는 "몸 속에서 울부짖는 생명의 소리를 생생히 살려내는 시를 쓰는 것이 요즘 관심사"라고 적었다. 김중식씨는 "끝까지 가려다 무서워서 되돌아나오는 비겁의 자리가 시의 마음자리"라고 답했다.
깨달음과 합일의 순간에 시는 태어나는 것이란 입장도 많았다. 김광규씨는 "삶(현실)이라는 직선과 꿈(환상)이라는 원이 맞닿아 접점을 이루는 찰나에 시가 탄생한다"고 썼다. 손택수씨는 "물러날 때만 눈에 보일 뿐 다가갈 수 없는 수평선처럼 '부재하는 아름다움'이 시를 쓰게 한다"고 적었다.
고두현씨는 땅 속에서 5, 6년을 자라다가 고작 10%만 싹을 틔우는 죽순에 빗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래 견딘 뿌리, 삶의 극점에서 단 한 번 피우는 꽃"이 시라는 논의를 폈다.
시인들에게 시는 곧 언어의 극한이다. 허만하씨에게 시는 "다른 방법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언어실천"이다. 이승하씨는 "시는 일상어를 부정하고 배신하기까지 하면서 탈세상을 꿈꾼다"며 '극점의 언어, 극한의 언어'를 시적 지향으로 제시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시를 정의하는 일"이라는 네루다의 유명한 말을 떠올리게 하는 답변도 있다. 이근배씨는 50년 가까이 시인으로 살아왔지만 "정작 시를 써보겠다고 붓을 들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보이는 것이 없다"고 토로했다.
김행숙씨는 "'쓴다'라는 행위 이전에 시는 어디에도 없다"면서 "(시 쓰기라는) 사건은 벌어지고 충돌하는 것이며, 이 속에서 나는 주도자가 아니라 반응하는 자일 뿐"이라고 썼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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