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후 60년,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발전은 '한강의 기적' '압축성장의 신화'라는 말로 요약된다. 보릿고개와 오일쇼크, 외환위기를 딛고 선진 한국을 일궈낸 주역 중 하나는 우리 기업들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경제규모 세계 13위의 기적을 만들어낸 삼성과 현대ㆍ기아차, LG, SK, 포스코 등 한국 대표기업들의 성공인자는 무엇일까. 60년 풍파를 이겨내고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이들의 장수비결과 경영철학 등을 10회에 걸쳐 조망해본다.
"기업은 사람입니더. 기업(企業)은 문자 그대로 업(業)을 기획(企劃)하는 것으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기업을 경영한다는 원리를 잊고 있심더. 내 일생을 통해 한 일중 80%는 인재를 모으고 키우는데 시간을 보낸기라예."(고 이병철 삼성 회장 1980년 7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연설 중)
■ 인재에 대한 열정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은 '사람'에 대한 욕심이 누구보다 컸다. 한번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꼭 필요하다면 다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열정의 소유자였다.
1985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삼성과 현대의 스카우트전이 국무회의 의제에까지 올랐다. 김광호 당시 삼성반도체통신 전무가 부사장 승진 발령에도 불구, 스카우트 제의를 한 현대전자로 옮긴 게 문제가 됐다.
이 선대 회장은 전 대통령과의 개별 면담자리에서 스카우트 문제를 슬쩍 꺼냈고, 전 대통령은 김 전무의 스카우트 내막을 알아본 뒤 국무회의에서 부당 스카우트 방지 대책을 마련토록 지시했다. 김 전무는 이적 보름 만에 삼성으로 복귀했고, 삼성전자 부회장을 역임하며 영원한'삼성 맨'으로 남았다.
1938년 중국 만주에 건어물을 내다팔던 '삼성(三星)상회'로 출발한 삼성의 역사는 우리나라 근대산업의 발전 및 생활 변천사와 궤를 같이한다. 삼성은 해외에서 전량 수입하던 설탕을 국산화하기 위해 제일제당(53년)을 만들었고, 우리 체형에 맞는 양복을 만들기 위해 국내 최초의 모직 회사인 제일모직(54년)을 세웠다.
라디오와 TV가 일상의 즐거움이던 69년에는 전자산업에도 진출했다. 당시 국내ㆍ외 기업들은 삼성의 전자산업 진출을 무모한 중복투자라고 비판했지만, 삼성은 10년 만에 일본 마쓰시타를 제치고 세계 브라운관 TV 1위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잇단 사업성공의 원동력은 바로 '삼성의 인재들'이었다. 이 선대 회장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신입사원을 뽑는 날이면 직접 면접 시험장에 나타날 정도로 인재를 고르는데 신경을 썼다.
인재경영은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삼성은 66년 세계 최대 규모의 요소비료공장인 '한국비료' 공장을 세운 직후 사카린 원료를 허가 없이 팔다 적발됐다. 이른바 '한비 사건(일명 사카린 밀수 사건)'이다. 삼성 창립 이후 최대 위기였다.
그런데 검찰에 불려간 직원들은 한결같이 "자기가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한비 주식 51%와 운영권을 정부에 헌납하고 잠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극약처방을 내놓으면서 마무리했으나 결국 초기 삼성의 위기를 더 큰 밑거름으로 삼은 것은 '삼성맨'들이었던 것이다.
■ 신경영ㆍ창조경영 핵심도 사람
이건희 전 회장은 1987년 취임 직후 당시 핵심 사업이던 VCR사업을 살리기 위해 현대전자에 근무 중이던 윤종용 전 상무를 불러들이라고 지시했다.
삼성전자 VCR사업부 상무로 있던 85년 불량률 문제로 책임을 지고 현대전자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를 다시 찾은 것이다. 결국 그는 '인재제일'의 창업정신을 내세운 이회장의 간청으로 삼성에 복귀했고 탈모증에 시달릴 정도의 노력 끝에 VCR부문을 정상화시켰다.
윤 전 부회장은 이렇게 삼성, 나아가 한국의 최고 CEO로 자리하게 됐다. 남궁석 전 삼성SDS 사장과 경주현 전 삼성중공업 부회장도 한때 외도했다가 이 전 회장의 부름을 받고 삼성에 복귀한 대표적 '삼성맨'이다.
이 선대 회장이 삼성을 50여년간 '국내 최고기업'으로 키우며 신상필벌의 인재관리 전통을 세웠다면 이 전 회장은 20년간 삼성의 질적 도약을 이끌며 한층 폭 넓은 인재경영으로 발전시켰다.
이 전 회장은 2003년 6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모두 바꾸라"는 신경영 10주년의 성과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우리나라에 빌 게이츠 같은 천재가 한 두 명만 있어도 경제수준이 업그레이드되고 국가발전의 원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천재 육성 필수론'을 역설했다.
인재를 모셔오기 위해 자가용 비행기를 띄운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이 전회장의 '비행기 영입대상'이 누구였는지는 물론 '1급 비밀'이다.
이 전 회장의 인재경영은 CEO들에 대한 교육열에서도 나타난다. 이 전 회장이 꼽는 CEO의 덕목은'지행용훈평(知行用訓評:많이 알고, 직접 할 줄 알며, 시킬 줄 알고, 지도하고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CEO는'종합예술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은 이공계 출신 CEO들에게 문학과 철학을, 상경계 출신 CEO에겐 기술 지식을 전공자 못지 않게 터득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테크노경영대학원이 설립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 전 회장은 인센티브 신봉자기도 했다.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인력에겐 비용을 아끼지 않았고, 성과가 부진해도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신상필벌'에서 벌을 상으로 대체한'신상필상(信賞必賞)'이 유행할 정도였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초 '신경영'을 이을 새 화두로 '창조경영'을 선언했었다. 신경영으로 일류기업에 도달한 삼성이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던진 승부수다.
창조경영은 또 다른 이름의 인재경영이다. 기업이 개혁과 혁신을 뛰어넘어 조직원 스스로가 개별적으로 창조성을 꽃피울 때 비로소 초일류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함의다.
'또 다른 100년'을 내다보는 삼성은 지금 창사이래 최대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삼성의 오늘을 있게 한 삼성만의 DNA, 인재경영이 보다 확실하게 힘을 발휘할 때이고 그 책임은 남아있는'삼성 인재들'에게 있다.
■ 이필곤 前삼성물산 부회장
"삼성 70년 역사를 관통하는 세 가지 '성공인자'가 있다. 바로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 계열사 전문 최고경영자(CEO)와 임직원들의 일체감을 북돋우는 특유의 조직문화, 투명하고 장기적 안목으로 운영되는 철저한 인력관리 체계이다."
1980~90년대 '현대의 이명박, 삼성의 이필곤'으로 불릴 만큼 재계의 대표적 전문경영인으로 삼성신화를 일군 이필곤(67) 전 삼성물산 대표이사 부회장. 그가 1997년 삼성자동차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10년 만에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1965년 그룹 공채 6기로 삼성물산에 첫 발을 내디딘 이래 이 회사 대표를 두 차례(85~93년, 95~97년)나 역임한 '수출신화'의 역군이다. 이런 이력 탓인지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은 삼성물산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다르다.
"비록 80년대 들어 무게중심이 시장에서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옮겨가면서 삼성전자가 그룹 주력사로 떠올랐지만, 해외시장에서 발로 뛰며 라면부터 미사일까지 '메이드인 코리아'를 팔아온 주역은 삼성물산이었다."
33년간 삼성에 몸담으며 이병철 선대 회장과 이건희 전 회장을 직접 보필하기도 했던 그에게 오너는 어떤 분이었는지를 물었다. "이 선대 회장은 완벽주의자 였다.
해당 분야 CEO나 업계 전문가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했다. 그의 풍부한 지식과 시장의 맥을 정확히 짚어내는 통찰력은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해선 "남다른 담론(談論)을 가진 어려운 대화 상대였다"고 술회했다. "말수는 적었지만 화두로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깊은 사려와 끊임없는 고민의 흔적이 담겨 있어, 범인(凡人)으로서는 언뜻 이해하고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신(新)경영' 개념이 대표적이다.
삼성은 이를 계기로 안주하지 않는 개혁과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상생경영의 중요성과 지역전문가 양성, 삼성의료원 설립, 탁아소 운영 등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꿰뚫어봤던 선견지명의 경영인이기도 했다."
삼성 퇴임 임원 2,000명을 회원으로 둔'성우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지금도 '삼성 맨'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아직도 외부에선 '삼성 맨'을 다른 그룹 출신과 차별화하고 신뢰감을 보내는데, 이는 '1등 주의'를 지향해온 삼성 고유의 조직문화 덕분이다."
이 전 부회장은 '계열사별 자율경영체제'라는 삼성의 새 실험에 대해 "투명성 측면에서 지적 받은 부분은 시정돼야 하지만, 그룹을 전체적으로 이끌 수 있는 확실한 최고 책임자가 있어야 한다"며 '삼성의 미래'를 기대했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사진=원유헌기자 youhon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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