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길을 사람이 간다. 걸어서 간다. 휴대전화가 울린다. 전화를 받는다. 걷는 속도가 더 느려진다. 엄밀히 말하면 느린 것이 아니다. 그냥 사람의 속도이다.
문제는 이 길이 차도라는 데 있다. 아니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차도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다만 다른 길은 풀이 우거지거나 흙이 보이는데, 이곳은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있다. 그래서 차들은 이 길로만 달린다. 이 길을 사람이 걸어가니 차들은 사람의 속도로 따라가야 한다. 차의 속도로 보니 사람의 속도가 느리게 여겨지는 것이다.
골목길서도 차가 주인행세
걷는 사람 바로 뒤에 가는 차는 길의 주인이 사람이라고 믿는다. 보행자가 느리게 걸어가면 그 속도로 따라가고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고 하면 차를 멈춘다. 사람한테 비키라고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뒷차들이 참아주지 않는다. 빵빵대기 시작한다.
이 시골사람은 만만치 않다. 빵빵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저 제 속도로 뚜벅뚜벅 걷는다. 하긴 옆으로 비킬 수도 없다. 옆은 바로 논두렁이다. 아스팔트 길이 조금 넓어지자 시골사람은 옆으로 비켜선다. 차들이 빠른 속도로 그 사람 옆을 지나친다. 몇 대는 천천히 온 분이 안 풀렸다는 듯이 경적을 한번 울리고 간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로터리에서 정독도서관으로 들어가는 길은 전형적인 강북의 골목길이었다. 차들이 지나가기는 해도 조심스레 움직였다. 이곳이 작년에 조금 넓어지면서 가운데 아스팔트 포장길이 생겼다. 이곳을 지나가는 차들의 속도가 빨라졌다. 사람들이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가면 경적을 울리는 차들이 생겨났다.
이곳에도 가끔은 고집스런 보행자가 나타난다. 차들이 빵빵 대도 사람이 걷는 속도로 걷는 이들이다. 이들이 얄미운가, 아니면 이들을 응원하고 싶은가. 그 태도에 따라 당신이 모시는 길의 주인이 판가름난다. 길의 주인은 사람인가, 차인가.
나는 이들을 응원하는 사람이다. 물론 나도 때로 차를 몬다. 이런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길은 사람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모든 길의 주인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독도서관길이나 인사동길처럼 걷기에 적당한 길은 사람들이 아예 그 길을 점거하고 천천히 걸어서 그 길에 들어온 차들이 다시는 안 들어오도록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500미터도 채 못 되는 곳에 큰 길이 연결되는데, 굳이 이런 오붓한 길까지 차가 지나가도록 만든 공무원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서울길은 그래도 차도를 만들 때 인도가 있게 만들기라도 한다. 시골길은 차도만 있고 인도는 아예 없는 길이 태반이다. 작년에도 이 문제를 다뤘지만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갈수록 포장도로는 늘어나지만 그에 비례해서 지방민들이 안심하고 걸어갈 길은 줄어들고 있다.
평소에도 속도를 내고 달리는 차들 때문에 불편하던 현지 사람들은 휴가철이 되면 쏟아지는 차량으로 인해 길을 빼앗긴다. 사람의 속도로 걸어갔다간 쏟아지는 경적을 참아내야 한다.
이들에게 경적을 울리는 이들은 대부분 쉬기 위해 지방을 찾은 이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에게는 남들을 기다려줄 여유가 없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서 빨리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휴가는 휴식이 아니라 과제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바로 전국에 인도가 없는 길을 만드는 주범이다.
인도 없는 모든 차도는 인도
이제, 보행자들이 단결할 때가 왔다. 인도가 없는 모든 차도는 그 자체가 인도라고 선언하자. 그리고 사람의 속도로 느리게 걷자. 길의 주인이 사람인 것을 보여주자. 그래야 인도가 있는 차도가 생겨나고 한국사회가 중요시 할 것을 중요시하는 사회가 된다. 올 여름 시골길을 달리는 차들은 이 보행자들에게 예의를 갖춰주기 바란다.
서화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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