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
그대들의 첩보(捷報)를 전하는 호외 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역의 하늘 아래서 그대들의 심장 속에 용솟음치던 피가
2천 3백만의 한 사람인 내 혈관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의 방울소리에 터질 듯 찢어질 듯.
침울한 어둠 속에 짓눌렸던 고토(故土)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炬火)를 켜든 것처럼 화닥닥 밝으려 하는구나!
오늘 밤 그대들은 꿈속에서 조국의 전승을 전하고자
마라톤 험한 길을 달리다가 절명한 아테네의 병사를 만나 보리라.
(부분 발췌)
*
격정적이고 직정적인 언어가 땅을 뚫고 나온 뿌리처럼 종이를 단숨에 박차고 튀어나올 듯하다. 결승점을 통과한 뒤 두 손을 번쩍 치켜올린 마라토너의 심장 박동 소리를 그대로 전달하겠다는 듯 내달리는 붓 역시 벅찬 감동 속에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1936년 8월 10일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 낭보가 실린 신문 호외의 뒷면에 즉석에서 일필휘지 한 것으로 전하는 이 시는 식민지 청년의 한과 환희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심훈은 마치 자신이 아테네의 병사라도 된 듯 승전보를 알리는 이 시를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고 만다.
베이징 올림픽 기간 내내 우리 선수들이 전해오는 숭고한 결실에 가슴 벅차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착잡할 것 같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표어로 내건 우리 시대의 올림픽에도 심훈과 같은 식민지 청년은 없는지, 억압과 감시 아래 신음하는 사람들은 없는지….
손택수ㆍ시인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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