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12일 광복절 특별사면ㆍ복권 대상자를 확정하면서 '결단'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만큼 고심이 깊었다는 의미다. 불과 몇 달 전 형이 확정된 재벌 총수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부담감이 컸을 게다. 이에 이 대통령은 "기업인들을 현장으로 돌려보내 경제를 살리겠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비판적 여론을 돌파하는 강공을 택했다.
그러나 그 결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사업 추진본부장을 맡았다 비리로 구속됐던 양윤재 전 서울시 행정부시장이 슬그머니 이름을 올렸고, 현대CEO 출신인 이 대통령과 뗄 수 없는 관계인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도 사회봉사 명령을 다 이행하지도 않았는데도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사면을 통해 전하려는 '경제살리기에 올인하자'는 메시지가 양 전 부시장과 정 회장의 사면복권으로 빛이 바랜 느낌이다. 꼭 그들이 건국 60주년 사면에 포함돼야 경제가 살아나는 것인지…국민들이 좀처럼 감동을 느낄 수 없는 이유다.
사면은 헌법이 보장하는 고도의 통치행위다. 법치주의의 예외인 만큼 사면 대상은 분명한 명분과 기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수긍할 수 있고 대통령의 리더십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너무 등한히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른다.
특히 임기 초반 측근들을 버젓이 사면복권한 것은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오만함마저 묻어난다. 과거 정권들은 대통령 측근들의 사면은 가능한 늦추면서 국민의 눈치를 보았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임기 중 발생한 부정 비리에 대해 사면은 없다"고 못박았지만 그 원칙이 이번 사면으로 이미 허물어졌다는 혹평도 있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경제를 살리려면 먼저 법과 원칙에 따른 공정성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며 "대통령이 측근들을 사면 대상에 포함시켜놓고 명분을 강조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고 말했다.
명분과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 국정운영 스타일은 취임 초부터 계속되고 있다. 강부자(강남 땅부자)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출신) 인사, 임기제 기관장 사퇴 논란, 쇠고기 협상 파동 등은 하나같이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일방 독주식으로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역풍을 맞은 일들이다.
공기업 개혁도 그렇다. 구체적인 비전보다는 낙하산 인사를 통한 MB맨들의 포진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을 초래하고 있다. 법적 정치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해임을 강행한 KBS 사장 후임 인선이 그래서 국민에 올바른 국정인식을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말이 나온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론을 도외시한 채 마이웨이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려는 이 대통령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국정이 바로 설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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