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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2008/ 왕은 王이 되지 못하고, 劍은 금을 찌르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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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2008/ 왕은 王이 되지 못하고, 劍은 금을 찌르지 못했지만…

입력
2008.08.12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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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기춘 유도 73㎏급 결승서 13초 만에 허무한 한판패

갈비뼈가 부러진 걸까. 거친 숨을 내뱉던 왕기춘(20ㆍ용인대)은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레안드로 길레이로(브라질)가 휘두른 팔꿈치에 옆구리를 찍혔기 때문. 이를 꽉 깨문 왕기춘은 1분 7초 만에 다리들어메치기 한판으로 길레이로를 제압했다.

불굴의 투지를 앞세운 왕기춘은 결승에서 유럽 최강 엘누르 맘마들리(아제르바이잔)를 만났다. 왕기춘은 2007세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연장 접전 끝에 맘마들리를 이겼다. 하지만 실력차는 백지장 한 장. 부상까지 당한 터라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왕기춘과 맘마들리는 결승전이 시작하자 치열하게 잡기싸움을 벌였다. 맘마들리가 오른발을 잡는 순간 갈비뼈 통증 때문일까. 왕기춘은 뒤로 물러섰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은 맘마들리는 왕기춘을 들어메쳤다. 유연성이 탁월한 왕기춘은 아차 싶었지만 공중에서 재빨리 몸을 회전했다. 다행히 등이 아닌 팔이 바닥에 닿았기에 유효 또는 절반을 뺏겼구나 싶었다. 그러나 심판은 매정하게도 "잇폰(一本ㆍ한판)"을 외쳤다.

왕기춘이 불굴의 투지를 발휘했지만 끝내 금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다. 베이징올림픽 유도 남자 73㎏급 경기가 열린 11일 북경과학기술대학 체육관. 왕기춘은 결승전에서 13초 만에 맘마들리에게 한판을 내줘 은메달에 그쳤다. 예상 밖의 패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왕기춘은 한국 응원단과 안병근 감독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러나 퇴장하는 발걸음이 두 발자국을 지나기 전에 울음보가 터졌다. 회한의 눈물을 흘린 왕기춘은 태극기를 든 관중을 볼 때마 차렷 자세로 목례했다.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했는데 마지막에 조금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특히 가족에게는…." 눈시울이 붉어진 왕기춘은 곁에 맘마들리가 서 있는 걸 확인하자 그를 껴안으며 축하했다.

왕기춘의 아버지 왕태연씨는 관중석에서 아들을 응원했다. 아버지가 경기장을 찾은 날에는 어김없이 아들이 우승했다. 아버지는 가정 형편상 지난해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는 가지 못했다. "올림픽 만큼은"이라며 베이징을 찾은 아버지는 "은메달도 자랑스럽다"고 말했지만 눈가엔 '이슬'이 맺혔다.

● 남현희, 펜싱 플뢰레 아쉬운 역전패… 여자 사상 첫 銀

너무나 아쉬운 역전패였다. 눈에 잡힐 것 같은 금메달은 불과 40여초를 남겨두고 은메달로 색깔이 바뀌었다.

'땅콩' 남현희(27ㆍ서울시청)가 끝내 '펜싱 여제' 발렌티나 베잘리(34ㆍ이탈리아)의 벽을 넘지 못했다. 남현희는 11일 베이징 올림픽그린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펜싱 플뢰레 여자 개인전 결승전에서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한 '주부 검객' 베잘리에게 5-6으로 아깝게 패해 은메달에 그쳤다. 그러나 남현희는 여자 선수로는 한국 펜싱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냈다.

한국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자 플뢰레의 김영호가 금메달을 딴 적이 있지만 여자 선수는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처음으로 출전한 이후 단 한번도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남현희는 준결승전에서 이탈리아의 또 다른 강자 트릴리니를 15-10으로 꺾고 금메달에 대한 기대를 부풀렸다.

남현희와 베잘리의 결승전은 1라운드 초반 팽팽한 탐색전으로 흘렀다. 남현희는 빠른 발 놀림과 날카로운 공격을 앞세워 선공을 시도했지만 1분5초 노련한 베잘리에게 첫 포인트를 내줬다. 시드니와 아테네 대회를 2연패한 베잘리는 1분20초와 2분24초 연달아 남현희의 공격을 역습으로 맞받아치며 3-0으로 앞서 나갔다.

싱겁게 끝날 것 같던 경기는 2라운드에서 다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으로 흘렀다. 1분간 휴식을 취한 후 작전을 바꾼 남현희는 경기 재개 22초 만에 첫 포인트를 따낸 후 34초와 54초 잇달아 공격에 성공하며 3-3 동점을 만들었다. 그러나 1분43초께 베잘리에게 가슴 찌르기 역습을 당해 다시 리드를 뺏겼다.

3-4로 뒤진 채 3라운드에 돌입한 남현희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2분 여간의 팽팽한 탐색전이 끝난 후 남현희는 전광석화처럼 상대의 허를 찔렀고, 전광판에는 남현희의 포인트가 기록됐다. 기세를 올린 남현희는 2분19초 베잘리와 함께 동시에 공격을 성공시켰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남현희의 득점이 인정됐다. 5-4 역전.

이제 41초만 버티면 한국 여자펜싱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의 주인공에 등극하는 상황. 그러나 베잘리는 역시 세계 랭킹 1위다웠다. 베잘리는 2분31초 5-5 동점을 만든 후 불과 4초를 남겨두고 남현희의 왼팔을 찔러 극적인 '금메달 포인트'를 따냈다. 베잘리는 포효했고, 남현희는 고개를 떨궜다.

'성형 파문'을 딛고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2관왕에 이어 올림픽 첫 은메달을 따낸 남현희는 "처음에는 긴장했는데 경기가 잘 풀렸다. 베잘리가 1위답게 노련하게 잘했다"며 "5-4로 이기고 있을 때 상대 공격을 유도하려고 페인트를 시도했지만 베잘리의 빠른 공격에 말려 2점을 내줬다. 앞으로 더 노력할 테니 펜싱을 더 사랑해달라"고 소감을 밝혔다.

베이징=이상준 기자 베이징=이승택기자 l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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