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로 공기업 개혁을 약속하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정권 역시 없었다. 공기업 개혁은 언제나 정권 초 '반짝 이벤트'였다.
이유는 집권세력(정치인 관료 포함)에게 공기업이 갖는 양면적 의미 때문인 듯 싶다. 우선 민영화나 통폐합이 그렇다. 개혁을 위한 당연한 과제지만, 한편으론 공기업 수를 줄이면 관료나 정치인, 정권창출 공신들에게 나눠 줄 자리도 사라진다. 경영개혁도 마찬가지다. 공기업도 기업인데 시장원리에 충실하려면 정부는 간섭을 줄여야 겠지만 규제의 끈을 놓으면 공기업에 대한 장악력은 급속히 위축될 것이다.
아무리 개혁명분을 내걸었지만 과연 자리가 없어지고, 힘이 빠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결국 공기업은 권력에게 개혁의 대상인 동시에 이용의 대상이었고, 이런 이중성으로 인해 공공개혁은 늘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것이다.
MB정부의 공기업 개혁 프로그램을 담은 '제1단계 공기업 선진화 방안'이 11일 당정회의를 통해 발표된다. 민간에 매각할 공기업리스트가 나올 예정인데, 대부분 중소형 규모이고 눈길을 사로 잡을 만한 '월척급' 공기업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공기업을 몇 개 팔고, 몇 개 통합하느냐가 평가의 잣대는 될 수 없다. 진짜 개혁은 공기업을 보는 정부의 태도, 공기업을 운영하는 정부의 자세에 있다.
앞서 이뤄진 공기업 인사를 정부는 이미 '낙하산'으로 채웠다. 공기업 운영에 대한 정부의 시시콜콜 간섭도 여전하다. 공기업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방만한 경영, 이에 대한 관할부처의 방조 역시 달라진 게 없다. 이런 상태에서 공기업을 열 개 스무 개 민영화하면 뭐하고, 토공ㆍ주공과 신보ㆍ기보를 통합한들 뭐가 달라진다는 말인가.
공기업 개혁의 핵심은 매각이나 통폐합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다. 낙하산을 배제하는 인사개혁, 간섭을 줄이고 자율성을 보장하는 규제개혁, 그러면서도 무책임과 방만함은 확실히 뜯어고치는 경영개혁 등 '소프트웨어' 혁신이 진짜 중요하다.
실적 위주로, 하드웨어쪽으로 접근한다면 MB정부의 공기업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 11일 나올 1단계 선진화 방안에 소프트웨어 개혁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면, 2ㆍ3단계 때는 꼭 들어가야 한다. 공기업 개혁을 보는 국민들의 관전포인트도 이런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성철 경제부 차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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