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홀린 8일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은 감동의 여운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장대한 쇼였다. 베이징 국가체육장에서 개막식을 지켜보면서 '감동 그 자체였다'는 식의 상투적 표현이 왜 그토록 유용한지 새삼 실감했다.
■ 주체할 수 없었던 감동과 전율
2,008명의 청년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최첨단 발광다이오드(LED)가 내장된 북을 두드려 개막 카운트 다운을 하는 환상적인 불빛 쇼, 147m의 거대한 두루마리로 중화 문명의 위대함을 알리는 퍼포먼스, 올림픽 주제가가 울려 퍼지는 거대한 구(球)가 순식간에 지구본으로 바뀌고 공중에 매달린 청년들이 그 위를 내달리는 장면, 마지막 성화주자 리닝(李寧)이 공중에서 힘차게 뛰며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모습…. 감동의 장면을 일일이 꼽기 힘들었다. 함께 지켜본 각국 관중도 쉴새 없이 탄성을 질렀다.
잠깐의 공연에 수 천 명씩 동원되는 규모의 장대함과 '장이머우(張藝謀)식' 색채 미학으로 수놓은 공연이 끝나자 '영원히 기억하도록 조금씩 쪼개서 길게 감상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였다. 외국 관중들은 "올림픽 첫 금메달은 최고의 개막식을 선사한 중국"이라며 찬탄했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이런 중국이 못해낼 일이 없겠구나"하는 전율도 모두 느꼈다. 66억명의 지구인 중 공연을 시청한 8억명의 느낌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화려한 개막식은 의미심장한 메시지도 던졌다. 공연은 종이, 문자, 화약 등을 창안한 중국 문명의 '찬란한 시대'를 거쳐 중국과 세계가 한 가족이 돼 번영한다는 '영광의 시대'로 이어진다는 선명한 주제를 담았다. 중국 없는 현 세계는 상상할 수 없고, 다시 잠에서 깨어난 신중국은 과거의 영광을 재연해 미래를 주도할 것이라는 메시지이다.
현장의 감동과 느낌은 매우 정치적이었다. 무려 86개국 정상이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등 강대국 정상들은 무한한 저력을 내뿜으며 턱 밑까지 추격해온 중국의 묵직한 존재감을 생각했을 게 틀림없다.
짙은 경계심도 가눌 수 없었을 것이다. 백년의 꿈인 올림픽을 열어 30년간의 개혁 개방을 자축하는 이번 잔치가 중국의 진정한 '커밍아웃'이라는 미국 언론의 풀이도 비슷한 맥락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중국과 이웃으로 살아야 하는 한국의 숙명을 곱씹었을 것이다.
각국 정상이 이런 생각에 젖어있을 때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비롯한 중국 권력 서열 1~9위의 지도자들은 새 세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는 이벤트를 귀빈석에서 지켜봤다. 간간히 화면에 비친 이들의 표정은 평소처럼 엄숙하고 숙연했다. 만족감과 자부심이 한껏 묻어있었다.
■ 우리에게 도전인 동시에 기회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들이 호탕하게 웃거나 맘껏 공연을 즐기는 모습은 연출되지 않았다. 중국 지도자들의 얼굴엔 오히려 좀 더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에 허리띠를 풀지 않아야 한다는 단단한 각오가 배어있었다. 7년의 올림픽 준비기간 동안 노출됐던 인권 및 소수민족 독립 움직임 등 체제를 흔드는 아킬레스건, 고도 성장이 낳은 환경오염, 빈부격차 등 개혁 개방의 부작용도 이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의 숙제인 올림픽의 안전한 진행에 대한 스트레스도 클 것이다.
이런 난제들을 해결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재연하려는 중국을 우리는 그저 바라볼 수만은 없다. 중국의 비상은 우리나라에게도 도전이자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올림픽 경기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올림픽 이후 중국과 세계의 미래를 상정하고 우리 민족과 국가가 가야 할 비전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절박한 미래를 향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시간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이영섭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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