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 세상/ '커튼' 사소한 것의 거대한 힘을 발견하는 소설의 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 세상/ '커튼' 사소한 것의 거대한 힘을 발견하는 소설의 힘

입력
2008.08.11 00:15
0 0

/밀란 쿤데라 지음ㆍ박성창 지음/민음사 발행ㆍ232쪽ㆍ1만3,000원

카프카 이래 최고의 체코 출신 작가로 꼽히는 밀란 쿤데라(79ㆍ사진)가 2005년 발표한 에세이집이다. 총 7부로 구성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를 거칠게나마 요약한다면 ‘진정한 소설의 요건은 무엇인가’ 혹은 ‘소설가는 무엇을 써야 하는가’가 될 것이다. <농담> <웃음과 망각의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느림> 등 진지한 사유와 파격적 형식을 갖춘 문제작을 줄기차게 내놓고 있는 쿤데라의 소설론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쿤데라는 16~17세기 활동한 라블레(<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이야기> )와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를 “소설에서 특별한 가치, 미적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했던”(15쪽) 비조(鼻祖)격 작가로 꼽으면서 이들을 기점으로 미학적 특질을 갖춘 장르로서 소설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기존 산문과 소설을 구분 짓는 행위는 무엇인가. 쿤데라는 ‘커튼 찢기’라고 말한다. “세상은 단장을 마친 상태, 가면을 쓴 상태, 선(先)해석이 가해진 상태다.…세르반테스가 새로운 소설 기법을 개척했던 것은 바로 선해석의 커튼을 찢어 버렸기 때문이다.”(126~127쪽) 책 속 다른 표현을 빌자면 “소설은 자기만의 기원과, 그에 고유한 시기들의 리듬이 있는 자신만의 역사를 갖고 있”(87쪽)을 때 비로소 소설은 세계의 진실에 도달하는 문(門)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오직 소설만이 사소한 것의 거대하고도 신비로운 힘을 발견해낼 수 있다.”(36쪽)

세계와 대면하는 방식으로서 소설의 독자적 입지에 대한 쿤데라의 믿음은 절대적이다. 그는 문학이 철학에 사상적 콘텐츠를 빚지고 있다는 통념을 단호히 거부한다. 일테면 철학적 실존주의가 발흥하기 20~30년 전 소설은 인물 성격에 대한 심리적 분석에서 인간이 처한 상황 조건을 살피는 실존적 분석으로 자체적인 방향 전환을 이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쿤데라는 프란츠 카프카, 헤르만 브로흐(<몽유병자들> ), 로베르트 무질( <특성 없는 남자> ) 등을 언급하며 일군의 작가들이 실재의 재연이나 스토리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완결적인 상황과 공간을 창조해낸 점을 높이 평가한다. “소설 역시 역사적 시대 설명이나 사회의 묘사 수단으로 존재하기를 거부하고 전적으로 ‘소설만이 말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한다.”(96쪽) 그는 소설 형식을 해체하고 단순히 스토리만 남긴다는 이유로 소설의 연극ㆍ영화 각색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 소설의 근본과 가능성에 대한 노작가의 도저한 믿음이 소설의 위기론이 파다한 오늘날을 곱씹게 한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