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지음ㆍ박성창 지음/민음사 발행ㆍ232쪽ㆍ1만3,000원
카프카 이래 최고의 체코 출신 작가로 꼽히는 밀란 쿤데라(79ㆍ사진)가 2005년 발표한 에세이집이다. 총 7부로 구성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를 거칠게나마 요약한다면 ‘진정한 소설의 요건은 무엇인가’ 혹은 ‘소설가는 무엇을 써야 하는가’가 될 것이다. <농담> <웃음과 망각의 책>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느림> 등 진지한 사유와 파격적 형식을 갖춘 문제작을 줄기차게 내놓고 있는 쿤데라의 소설론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느림> 참을> 웃음과> 농담>
쿤데라는 16~17세기 활동한 라블레(<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이야기> )와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를 “소설에서 특별한 가치, 미적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했던”(15쪽) 비조(鼻祖)격 작가로 꼽으면서 이들을 기점으로 미학적 특질을 갖춘 장르로서 소설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돈키호테> 가르강튀아와>
그렇다면 기존 산문과 소설을 구분 짓는 행위는 무엇인가. 쿤데라는 ‘커튼 찢기’라고 말한다. “세상은 단장을 마친 상태, 가면을 쓴 상태, 선(先)해석이 가해진 상태다.…세르반테스가 새로운 소설 기법을 개척했던 것은 바로 선해석의 커튼을 찢어 버렸기 때문이다.”(126~127쪽) 책 속 다른 표현을 빌자면 “소설은 자기만의 기원과, 그에 고유한 시기들의 리듬이 있는 자신만의 역사를 갖고 있”(87쪽)을 때 비로소 소설은 세계의 진실에 도달하는 문(門)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오직 소설만이 사소한 것의 거대하고도 신비로운 힘을 발견해낼 수 있다.”(36쪽)
세계와 대면하는 방식으로서 소설의 독자적 입지에 대한 쿤데라의 믿음은 절대적이다. 그는 문학이 철학에 사상적 콘텐츠를 빚지고 있다는 통념을 단호히 거부한다. 일테면 철학적 실존주의가 발흥하기 20~30년 전 소설은 인물 성격에 대한 심리적 분석에서 인간이 처한 상황 조건을 살피는 실존적 분석으로 자체적인 방향 전환을 이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쿤데라는 프란츠 카프카, 헤르만 브로흐(<몽유병자들> ), 로베르트 무질( <특성 없는 남자> ) 등을 언급하며 일군의 작가들이 실재의 재연이나 스토리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완결적인 상황과 공간을 창조해낸 점을 높이 평가한다. “소설 역시 역사적 시대 설명이나 사회의 묘사 수단으로 존재하기를 거부하고 전적으로 ‘소설만이 말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한다.”(96쪽) 그는 소설 형식을 해체하고 단순히 스토리만 남긴다는 이유로 소설의 연극ㆍ영화 각색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 소설의 근본과 가능성에 대한 노작가의 도저한 믿음이 소설의 위기론이 파다한 오늘날을 곱씹게 한다. 특성> 몽유병자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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