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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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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여름날

입력
2008.08.1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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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버스에 앉아 잠시 조는 사이

소나기 한줄기 지났나보다

차가 갑자기 분 물이 무서워

머뭇거리는 동구 앞

허연 허벅지를 내놓은 젊은 아낙

철벙대며 물을 건너고

산뜻하게 머리를 감은 버드나무가

비릿한 살냄새를 풍기고 있다

여행을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기왕에 나선 길이라면 직행보단 완행이 났겠고, 포장도로보단 비포장도로가 좋겠다. 완행이라야 풍경을 좀 더 찬찬히 맛볼 수 있고, 비포장도로라야 길의 굴곡을 더 잘 느낄 수 있겠기 때문이다.

시인도 여름 어느 날 길을 떠난 모양이다. ‘마천馬川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것을 보니 지리산 부근인가 보다. 덜컹거리는 시골 버스 의자에 실린 엉덩이가 말 잔등에 실린 엉덩이처럼 길이 선물하는 리듬을 따라 기분 좋게 오르내리는 장면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완행과 비포장길이 아니라면 좀처럼 만나기 힘든 풍경이다.

시인은 여행길에 목이 말랐던지 말이 물이라도 찾듯 소나기를 슬쩍 집어넣었다. ‘잠시 조는 사이’라고 눙치고 있지만 소나기를 만난 시인의 상상력은 물속에 들어갔다 나온 붓처럼 단숨에 화면에 싱싱한 물감 냄새를 뿜어낸다. 감히 분 물속으로 텀벙 뛰어들지 못하고 소심하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버스에게 보란 듯이 허벅지를 내놓은 채 물을 건너는 젊은 아낙과 ‘마악’ 목욕을 마치고 나온 버드나무의 눈부신 생기!

버드나무의 머리를 감겨주고 싶은 소나기의 마음으로 폭염에 지친 일상을 흔들어볼 수는 없을까. 생명이 없는 버스마저 갑자기 분 물을 무서워할 줄 아는 정감 있는 존재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시는 일종의 여행이다. 여행이긴 하되 시는 관광책자에 나오는 명승지나 천연기념물만을 노래하지 않고 우리의 삶 속에서 진경을 찾아낸다. 맡아보라, 세상에 가득 찬 저 압도적인 삶의 살냄새들을.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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