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중국미술이라는 레테르가 어떤 작가들에게는 '주홍글씨'처럼 여겨지는 모양이다. 중국색과 정치색 물씬한 그 레테르 하나면 화려한 후광을 입을 수 있는데도, 고의적으로 이런 흐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자기만의 세계를 고수하고 있는 꿋꿋한 작가들이 있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중국작가 인치(尹齊ㆍ46)도 그런 작가들 중의 하나다. 프랑스 파리와 중국 베이징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는 중국의 '젊은 미술'을 대표하는 신생대 작가.
'미술 명문'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출신이지만, 1989년 이후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면서 중국풍을 넘어선 새로운 화풍에 눈을 떴다. 파리 자본주의의 경험은 그 스스로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하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파리에 갔는데, 그해에 톈안먼(天安門) 사건이 터졌어요. 위태롭고 불안했죠. 아예 파리에 눌러앉아 프랑스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 미술공부를 했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 나는 내가 최고의 추상미술을 하는 줄 알았는데, 프랑스에서 보니 내 작품은 추상도 아니었어요. 그 무수한 미술관과 박물관, 미술자료들을 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중국과는 사뭇 다른 자본주의의 충격을 일찍이 흡수한 덕분에 그의 작품은 물질세계와 자아와의 거리에 관해 탐구한다. 번잡한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것이 나와 물질 사이의 거리를 만드는 까닭에 우리는 대상을 바라볼 때 자신도 모르게 고정관념의 프리즘을 통해 대상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
인치는 이것이 사물의 본질을 은폐한다는 생각에서 대상을 자신만의 주관적인 시각으로 표현한다. 대상의 성격과 개성을 제거하기 위해 물감을 거칠고 두껍게 바른 후 주방기구로 구불구불하게 긁어내 마치 케이크 위의 생크림처럼 만든 '개' 시리즈가 이러한 미학의 산물이다.
"본래는 초상화를 그리고 싶었는데 구체적이고 특정한 맥락을 버리기 위해 개를 선택했어요. 개에게 사람들은 '너는 누구냐'고 묻지 않으니까요."
이후의 작품들은 한층 더 탈구체화의 경로를 밟고 있다. 흑백으로만 침실, 욕실 등 실내 공간을 그리면서 익숙한 공간을 초현실주의의 낯선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실내' 시리즈, 바다 고유의 색채를 버리고 회색의 몽환적이고 어두운 바다를 그린 '해(海)' 시리즈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작품경향은 그가 그린 매화 연작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인치는 청나라의 황제들이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에서 인민대중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유원지로 바뀐 중산공원을 그리면서 그것은 희미한 실루엣으로 처리해버리고 화면 중앙에 커다란 매화나무를 그려넣는다.
중산공원 특유의 역사적, 정치적 의미를 소거해 버리기 위해서다. 색상과 고유의 의미와 텍스처가 사라져버린 그의 그림은 마치 초현실주의의 작품을 마주 대하는 듯 고요하고 적막하다.
중국미술이 이처럼 각광을 받는 때 이토록 비중국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 조금은 억울할 법도 하건만, 그는 가만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유럽 사람들도 제 그림을 보고 중국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요. 개성적이니까요. 전 그게 아주 좋습니다. 굉장히 활발하게 거래되는 중국 스타작가들을 보면 오히려 적막할 일은 없겠다 싶어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걸요."
이번 개인전에는 '개', '실내', '바다' 연작과 최근의 매화 작품 등 유화 20여점과 드로잉 40여점이 선보인다. (02)720-1524.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